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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구든 다른 생명만큼 소중하다

입력
2017.08.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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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관한 논란은 언제나 거세다. 우리 스스로가 다 생명체여서 그런지, 생명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리의 근원적 관심사이다. 낙태에서부터 존엄사(尊嚴死), 동성애에서 동물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단번에 흥분시키는 많은 주제들은 생명과 관련이 깊다. 아마 정치와 종교를 제외하고 옆 사람과 말싸움을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주제는 없을 것이다. 아니, 정치와 종교야말로 생명을 주제로 이리저리 갈리는 판이다.

가령 최근에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국의 한 아기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전 세계에서 단 16명만이 앓고 있다는 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MDS)이라는 희귀병으로 뇌 손상을 입은 찰리 가드의 실험치료와 연명치료 여부가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프란체스코 교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논란에 가세한 이 사건은 많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아기를 돕기 위한 성금만 약 19억 원에 달하는 등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한 아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 자체 못지않게 흥미를 끄는 것은 댓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2차 논란’이다. 사건의 종류나 직접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등장하는 말, 그리고 이에 대한 격한 반응으로 이어지는 토론이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무엇이고 하니 대략 이런 식이다. “죽어가는 생명이 천지인데 왜 유독 ( )만 가지고 난리냐?” 물론 괄호 안은 해당되는 사건의 주인공이다. 특히 어떤 특정인 또는 개체의 생명이 도마에 오른 경우에 그 ‘특정성’에 반발하는 경우이다. 위의 찰리의 예를 들면, “매 10초마다 1명이 기아로 죽는 마당에 아기 하나가 웬 대수?“ 식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흔한 반응은 ”네 아기였으면 그 소리 했겠냐?“ 식이다. 어떤 이슈든, 이런 추가 토론이 벌어지지 않는 경우는 없다.

문제의 범위를 당면 이슈보다 확대시키는 것의 정당성. 결국 문제는 이것으로 요약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찰리의 예로 돌아가면, 어떤 이들은 찰리가 어떤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심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생명을 도외시한 채 한 개체에 천착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라고 본다. 물론 양측 다 나름의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저 손쉬운 균형을 제안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논란에 반드시 반영 및 고려되어야 할 중요 변수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그 변수란 바로 지금의 ‘시대성’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생명의 문제가 편재(遍在)한 시대이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생명의 기본 조건들이 위협받고 있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서 전 지구적 물 부족, 기상 악화, 여섯 번째 대멸종 등이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국지적으로 문제가 나타났던 게 과거의 모습이라면, 모든 게 얽히고설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심지어는 생명체 하나 하나가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지구 생명계 역사상 최대의 위기인 기후변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집합적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느 개별적 생명에 지나치게 불균형적인 에너지와 관심과 돈이 집중되는 현상, 이것은 분명한 문제이다. 자원과 인력의 분배가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치더라도, 생명과 관련된 논란은 생명 및 생명의 위기 상황의 편재성을 감안한다면 기본적으로 최대한의 공공성과 평등을 지향해 마땅하다. 그 어떤 생명체도 소중하지만, 정확히 다른 여타의 생명체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소중하기에 누구든 ‘대수’냐고 일축할 순 없다. 그러나 지구 생물 전체가 공동운명체임이 절실해진 지금, 특정 대상에만 한정되는 관심과 정성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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