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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이륙 이후의 연시, 혹은 당신과 같은 비행기 안에서

입력
2015.06.1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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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드리워진 그림자 좀 봐 저 조그만 그림자

우리와 함께 날고 있어

그렇게 우리들의 두려움 중 가장 큰 두려움이

우리 아래 남아 있어

이렇게 낮은 때는 일찍이 없었지

한 이가 다른 이보다 훨씬 먼저 죽을 가능성이

라이너 쿤체

중국 시인 저우궁두는 ‘운 좋은 이’라는 짧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해요. “옛날 책을 보면 운 좋은 이들이 많아서 누군가를 사랑하면 죽을 때까지 사랑하더이다. 옛 무덤들에도 운 좋은 이들이 많아서 한 사람을 사랑하면 죽어서도 한곳에 묻히더이다.” 그런데 운 좋은 사람들이 꼭 욕심을 부려요. 독일의 노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다 그와 한날 한시에 세상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한 사람만 남겨두고 먼저 죽을 확률이 적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간절한 사랑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실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는 아내에게 불치병이 생기자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20년 동안 그녀를 극진히 돌봤습니다. 그리고 84세의 나이로 가망이 없어진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는데요. 놀라운 것은 그가 매우 열성적으로 사회적 현실에 참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프랑스 68혁명의 주요 사상가였으며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선구적인 노동이론가이기도 했어요.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이 사람은 아내를 위해 그 모든 대의를 단번에, 아주 겸손하게 내려놓았어요. 철두철미한 사회의식과 내밀한 사적 감정이 한 존재 안에서 이토록 강렬하게 공존하긴 참 힘든데 말입니다. 모든 사람과 단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제 곁에 있는 사람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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