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8.01.25 16:32
수정 : 2018.01.25 20:50

[북 리뷰] "중국은 오만함, 미국은 피해망상 벗어나야"

그레이엄 앨리슨 '예정된 전쟁"

등록 : 2018.01.25 16:32
수정 : 2018.01.25 20:50

지난해 11월 미ㆍ중 정상회담에서 만난 '중국몽'의 시진핑(왼쪽)과 '아메리카 퍼스트'의 도널드 트럼프.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도 오만함을 버려야겠지만, 미국도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목의 ‘예정된(Destined)’이란 불길한 단어 자체가 이 책은 지정학 책임을 명백히 일러준다.

지정학에 대한 비판은 많다. 땅과 바다가 생긴 모양을 두고 그게 그 나라와 민족에게 주어진,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운명인 양 전제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 밑바닥에는 지정학적 사고라는 게 결국 전쟁으로 치닫더라는, 경험칙에서 우러나온 반감이 깔려 있다.

미ㆍ중 간 갈등 문제를 다룬 ‘예정된 전쟁’ 또한 그런 책일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레이건 정권 이후 여러 정권에 걸쳐 국방 문제를 자문해온 그레이엄 앨리슨이 저술한 이 책은 여기서 살짝 비켜서있다. 미국에게 ‘너무 흥분하지 말라’는 은근한 신호를 보낸다.

책의 바탕은 저자가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투키디데스의 함정 프로젝트’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지역 맹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보고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란 기록을 남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경쟁, 그리고 이 양국간 경쟁이 그리스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거기서 이런 명제를 뽑아냈다.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다.” ‘부상’과 ‘두려움’, 미ㆍ중 관계 또한 그렇다는 얘기다. 아니, 기존 세력균형에 균열이 일어난다는 것은 늘 그렇다.

저자는 여기에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이름을 붙이고 서구 역사 500년의 기록을 뒤져 16가지 사례를 찾아낸다. 15세기 말 해외식민지를 둘러싼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결에서부터 16세기 초 서유럽 영역을 둔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결, 20세기 초 세계해군력을 둔 미국과 영국의 대결, 1ㆍ2차 세계대전과 냉전, 유럽연합(EU)의 등장까지. 16가지 사례 가운데 12건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부상하는 국가가 겪는 ‘신흥세력 증후군’과 두려워하는 국가가 겪는 ‘지배세력 증후군’간 갈등이다. 부상하는 국가는 ‘오만함’에, 두려워하는 국가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데, 오만함과 피해망상이 맞물려 돌아가면 전쟁은 “필연적”인 것이 된다. 반면 이 오만함과 피해망상을 잘 통제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저자의 특이성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끄집어낸다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힘 자랑을 위해 웃통 벗고 총 들고 말 타고 사냥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걸 두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강압적 언행과 무표정한 얼굴 또한 매우 재수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한 몸에 지닌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20세기 초 미국은 마침내 영국을 추월했다. 그 때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는 먼로 독트린을 확대 실행했다. 아메리카와 유럽이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먼로 독트린은 사실 말만 독트린이었다. 시어도어는 해군력 강화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먼로 독트린의 현실화에 집중했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 강국들을 잇달아 들이받으면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을 강하게 통제했다. “신은 멀고 미국은 가깝다”는 중남미 국가의 탄식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저자는 여기서 이렇게 묻는다. 시어도어와 시진핑은 같은가, 다른가. 미국인으로서는 답하기 쉽지 않겠지만, 정치학자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둘이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

중대한 차이는 있다. 시어도어의 도발에 대해 당시 대서양 세계의 지배자였던 영국은 어느 정도 순순히 물러났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같은 앵글로색슨족이라는 공통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영국 내에서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그러했듯, 영국이 미국에 제국 운영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ㆍ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발행ㆍ516쪽ㆍ2만원

책은 미국과 중국은 전혀 다르다고 하면서도 중국이 황제 중심 중화주의 이념에 찌들었다는 뻔한 비판을 하진 않는다. 저자는 또 한번 ‘미국인’이 아니라 ‘정치학자’의 입장을 택한다. 중국이 중화주의에 찌든 것만큼이나, 미국 또한 “자신들의 문명적 성취를, 특히 정치 영역의 성취를 거의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떠받”들기는 매한가지다. 여기에다 최근 역사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한다. “타락하고 허약하고 부패하고 어설프다는 경멸과 함께 오랫동안 멸시받고 잊혀진 한 아시아 민족에게 밀려나는 상황은 미국인들로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다.” 한마디로 내가 질 만한 상대에게 졌다는 생각을 미국이 전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시어도어와 그 이후 미국의 도발에 유연하게 대응한 영국의 유려한 외교술을 ‘그레이트 라프로슈망(Great Rapprochementㆍ대(大)화해)’이라 부르며 칭찬한다. 영국이 그렇게 유연하게 물러섬으로써 미국 중심 체제가 굳어지는 가운데서도 영국은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중국에게도 오만함을 버리라고 해야겠지만, 미국에게도 피해망상에서 벗어나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두 나라가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이 책 발간 이후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국제정치계의 화두가 됐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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