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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없어도... AI 컬링 로봇, 인간을 당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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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없어도... AI 컬링 로봇, 인간을 당황시켰다

입력
2018.03.08 17: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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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자들 모인 고교팀 상대

1엔드 승리 후 역전패 당해

‘전략’ 컬브레인, ‘투구’ 컬리 구성

SW 등 모두 국산 부품으로 제작

“빙질 등 고려해야 할 요소 복잡

스위퍼 로봇 완성땐 정확도 상승

무인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 활용”

8일 오후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센터. 만화에서나 봤던 날렵한 하얀색 로봇이 고개를 삐쭉 쳐들고 약 40m 떨어진 맞은편 ‘하우스’를 주시했다.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세계 유일 인공지능(AI) 컬링 로봇이다. 우뚝 선 로봇의 키는 220㎝나 됐다.

하우스 뒤에 선 스킵(주장) 로봇과 교감한 투구 로봇은 곧 고개를 착착 접어 몸체에 집어넣은 뒤 스톤을 안고 부드럽게 10m를 전진하다 호그라인 앞에서 투구했다. 약간의 컬(회전)을 머금은 스톤은 바깥쪽 상대 스톤을 정확히 쳐냈지만 하우스 중앙 상대의 1번 스톤까지 두 개를 동시에 밀어내는 ‘더블 테이크 아웃’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천훈련원에서 세계 최초로 진행된 AI 로봇과 인간의 컬링 대결에서 인간이 승리를 거뒀다.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는 인간을 완벽하게 꺾었지만, 아직 빙상(氷上)의 벽은 반상(盤上)보다 높았다.

이날 AI 로봇과 대결한 상대는 강원 춘천기계공고팀이다. 지난해 이마트배 컬링대회 고등부에서 우승한 실력자들이다. 오전에 1엔드만 진행한 연습경기에서 컬리에게 1대 0 박빙의 차로 패한 학생들은 오후 2엔드 경기에서는 분발했다. 사람만 얼음을 닦아 투구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스위핑을 한 첫 엔드에서 1대 0으로 승리해 컬리에 패배를 되갚아줬고, 양쪽 모두 스위핑 없이 진행한 두 번째 엔드에서도 예상 밖으로 2대 0 승리를 거뒀다.

춘천기계공고팀 스킵(주장) 이한주(19) 군은 경기 뒤 “스위핑 없이도 로봇이 일정한 웨이트(힘)로 스톤을 정확히 투구한 데다 전략도 다양해 당황했다”며 “AI 기술의 발전이 놀랍고 한국 컬링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AI 컬링 로봇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4월 공모로 선정한 고려대ㆍ울산과학기술원 등 8개 기관의 연구원 60여 명의 공동 작품이다. 최적의 투구 전략을 세우는 AI 컬링 소프트웨어(SW) ‘컬브레인(CurlBrain)’과 투구와 스킵을 하는 로봇 ‘컬리(Curly)’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일본 컬링 SW 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SW는 물론 모터 등 주요 부품 모두 국산이다. 하드웨어 제작은 국내 기업 엔티(NT)로봇이 맡았다. 빗자루처럼 생긴 브룸으로 스위핑을 하는 스위퍼로봇은 올해 가을쯤 개발이 완료된다. 로봇 컬링팀에는 아직 ‘영미’가 없는 셈이다.

AI 컬링 로봇은 스킵 컬리가 머리에 장착된 카메라로 인식한 경기 영상을 토대로 작동한다. 컬브레인이 최적의 투구 전략을 수립하면 투구 컬리가 웨이트와 방향, 컬을 조절해 스톤을 던진다.

8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인공지능 컬링 로봇이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8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인공지능 컬링 로봇이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컬브레인은 알파고처럼 기계학습(딥러닝)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1,321경기의 1만1,000엔드 경기 결과가 입력됐다. 투구 횟수만 따져도 16만회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 투구 정확도는 하우스 안에 스톤을 집어 넣는 드로우가 60~65%, 상대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 아웃이 약 85%다.

알파고처럼 100% 경기를 지배할 수 없는 건 스톤 간 충돌로 인해 무한대의 수가 존재하는 데다 빙질의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간대와 관중 수에 따라 빙질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고 경기 초반과 후반의 빙질이 확연히 달라 끊임없는 딥러닝이 요구된다.

한국인공지능학회장인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컬링은 바둑보다 고려해야 할 기술적 요소가 많고 복잡하지만, 스위퍼 로봇이 완성되면 정확도가 훨씬 상승할 것”이라며 “AI 컬링 로봇은 국내 선수 기량 발전은 물론 게임과 로봇제어, 무인자동차 등 관련 분야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AI 로봇과 인간의 컬링 대결을 지켜본 클라우스 로버트 뮬러 독일 베를린 빅데이터 센터장은 “환상적인 경기였다”며 “얼음 위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이천=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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