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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6.19 14:47
수정 : 2017.06.19 14:47

[김월회 칼럼] ‘신 없는 사회’를 일궈낸 교육과 복지

등록 : 2017.06.19 14:47
수정 : 2017.06.19 14:47

미국 사회학자 필 주커만에 의하면 지구상에 신 없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대체로 행복하게 사는 곳이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 등이 그곳이다. 그곳 사람들 대부분은 신을 믿지 않는다. 초등학교서는 신을 믿는다고 하면 따돌림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도 대개의 유럽인처럼 세례도 받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교회서 치르기를 선호한다. 다만 이는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문화적 관습이다. 그럼에도 중범죄 발생률이 낮고 자선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정ㆍ관계의 청렴도가 꽤 높으며 문제를 세속적으로 해결해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신이 없으면 인간은 마구 타락하고 무정부 상태가 판칠 것이란 통념에 균열을 내면서 ‘신 없는 사회’를 영위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필 주커만은 그 이유로 풍요로운 삶과 좋은 교육을 들었다. 사치를 맘껏 부릴 정도의 풍요를 이름이 아니다. 스스로 부여한 삶의 의미를 즐기며 구현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넉넉함을 말한다. 그 근저에는 강력한 사회 안전망 구비 등 좋은 복지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한다. 좋은 교육은, 교육이 부나 권력 획득을 위한 소모재로 취급되지 않고 인문 실현을 위한 공공재로 활용됨을 말한다. 교육을 위한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상위권에 꾸준히 자리했음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는 복지와 교육이 어떤 정신으로 설계되고 무슨 내용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그들이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넘어설 수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종교가 없어도 된다는 얘기를 함이 아니다. 그건 몰역사적이고 비과학적 독단에 불과하다. 다만 복지와 교육의 힘만으로도 인문적 시민사회의 구현이 가능했음에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교육이 복지의 고갱이로 정립돼야 하는 필요를 잘 말해주는 실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 행복과 사회적 건강의 구현과 진보를 위해서도 그래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식이 이윤 창출의 고정자산으로 활용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개념과 실체가 모호한 ‘4차 산업혁명’이란 표현으로 향한 시선을 지식으로 모으면, 그것이 인간보다는 인간 바깥에 훨씬 많이 집적되어가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금방 목도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지구촌을 주름잡은 빅 데이터가 대표적 예다. 그저 그러모아 쌓아두기만 하지도 않는다. 날로 ‘스마트’ 해지는 인공지능은 자기강화학습을 통해 집적한 빅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정리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산출된 결과도 사뭇 우수하다. 의료용 인공지능을 더 선호한다는 통계나 자율주행 기능을 가동한 시간이 많을수록 자동차 보험료를 깎아주는 제도(이는 영국 등 서구 일부 국가서 시행 중이다)가 밝히 말해주듯이, 그것에 대한 인간의 신뢰가 정책이나 제도 차원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이 빅 데이터와 자가 학습 역량을 장착한 인공지능보다 똑똑하며 창의적이라고 주장하기에 머쓱한 시절이 됐다. 전반적으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국부적으로 또는 제법 넓은 범위에서 기계가 인간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주장해온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지식의 저장과 이의 무한대에 가까운 창의적 활용 역량이었음을 감안할 때, 기계가 이를 인간보다 훨씬 잘 수행한다면 기계더러 더 인간답다고 해야 마땅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기계는 사용자와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변이시킨다. 기계는 그저 수동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용하는 인간과 그들이 사는 사회를 변화시켜 간다는 것이다. 핸드폰은 지하철 같은 공개된 곳에서 꽤나 사적인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사소할 수 있는 사례에 불과하다. 그 방향이 반드시 인간과 사회의 선한 진보에 맞춰지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세력이 이런 역능(力能)을 지닌 기계를 장악한다면?

디지털을 기반으로 작동되고 인터넷으로 두루 연결된 기계를 잘 알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극적 차원에선 잘못된 지식과 정보에 휘둘리는 부속품으로 전락되거나 기계에 일방적으로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서, 한층 적극적으론 그것을 사회적 건강과 인간 실현의 방편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우리는 평생 지식기반시대에, 또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서 살게 된다. 디지털-인터넷 기반 기계를 잘 알아야 함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만 행하면 되는 선택적 과업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행해야 하는 필수적 과업인 이유다. 지금처럼 교육을 인생 초반인 20대 언저리까지만 받으면 된다고 여긴다면, 진화하는 기계를 또 그 기계를 장악한 이들을 우리는 당해내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평생에 걸쳐 학습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교육은 복지와 상승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최소한일지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가능한 평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할 책무가 국가와 사회에 있기에 그렇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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