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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국정농단과 호가호위(狐假虎威)

입력
2016.11.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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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테크 김 대표. 공학박사 출신, 온화한 성격의 최고경영자(CEO).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 대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CEO로서 직원들 관리다. 그 방면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김 대표. 그래서 그는 조직관리를 대신해 줄 전문가를 찾았다. 헤드헌팅 회사 추천으로 예비역 중령 출신을 영입할 수 있었으니 그가 바로 차 상무.

“대표님은 연구에만 매진하십시오. 악역은 모두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조직에서 그런 인간도 필요합니다.”

차 상무가 입사하자 느슨하던 회사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어 갔다. 차 상무는 확실히 군기를 잡았다. 실수를 저지르는 직원들에게는 시말서를 쓰게 했다. 차 상무가 직원들을 몰아붙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김 대표에게 건의해서 회식이나 단체 산행 등을 진행했다. 긴장됐던 사내 분위기가 그런 행사를 통해 완화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가히 차 상무는 ‘밀당’의 달인. 김 대표는 당초 본인이 바라던 대로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차 상무가 입사 후 10개월쯤 지났을 무렵, 사내에는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다. 김 대표가 어떤 일을 직원들에게 지시하면, 직원들은 차 상무의 눈치를 살폈다. 차 상무 허락이 떨어져야 직원들이 움직였다. 차 상무도 조금씩 변해갔다. 그는 “직원들이 대표님에게 상당히 불만이 많더군요, 다소간 동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막고 있습니다”면서 아직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대우 수준을 올려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제왕학의 대가 한비자는 ‘형벌권(징계권)’과 ‘포상권’은 모두 군주 한 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군주로부터 형벌권과 포상권이 떨어져 나갈 경우 그 권한을 물려받아 휘두르는 권신(權臣)들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남용될 위험이 크며, 궁극적으로는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보다는 형벌권과 포상권을 행사하는 권신들의 뜻을 더 따르려 한다고 했다.

한비자는 이런 상황을 소해휼의 이야기를 통해 강조한다.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어느 날 선왕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강을이 대답했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은 뒤 먹으려고 했더니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나를 따라와 봐.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를 부리는 것을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한다.

한비자는 말한다. “군주란 형(형벌)과 덕을 가지고 신하를 제어하는 자이다. 만일 군주가 형과 덕의 권한을 놓아두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쓰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어 당할 것이다.”

독재를 일삼는 군주의 해악 못지않게 권신들에 의해 휘둘려서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군주의 해악 역시 큰 법이다. 정신의 균형을 잃은 사람에게 칼을 맡겨서는 안 되지만, 한편 칼을 잡고 쓸 줄 모른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며, 안전을 그에게 의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죄악이 된다 할 것이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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