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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소반과 숟가락

입력
2016.06.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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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화여대 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19세기 옛 가구들을 전시하는 ‘목木ㆍ공工’전이 열리고 있다. 그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어울릴 법한 공간에 전시되고 있는 낡은 소반(小盤)들이다. 전시기획자들은 원래는 낮은 방바닥에 놓여 있었을 그 낡은 소반들을 들어 올려, 화이트 큐브 안의 높은 단상 위에 안치했다. 그렇게 들어 올려진 소반들은 마치 처음으로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내성적인 사람들처럼 상기된 모습으로 높은 곳에 말없이 앉아 있다. 흰 방의 밝은 조명 아래 검붉은 칠은 도드라지고 마디를 이은 금속장식들은 빛을 받아 단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일관되면서도 곡선을 이루는 배치 간격을 유지한 덕분에 따로 떨어져 있었을 때는 부여받지 못했던 음악적 리듬감이 각각의 소반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어떠한 밥그릇도 이고 있지 않은 채 흰빛만을 받고 있는 그 낡은 소반들은, 이제 자신들이 속해 있던 고된 노역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고양된 의미를 가진 오브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소반이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전시 기획자들의 안목을 통해 창조된 아름다움이다. 어떤 대상도 그것이 적절히 전시되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입을 수 없고 어떻게 전시되느냐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발생한다. 관람자가 체험한 것은 소반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소반 전시의 아름다움이다.

예술로 고양되기 전 19세기 조선의 양반가 소반 위에는 전시실의 흰빛 대신 흰밥이 놓여 있었다. 양반의 침이 묻은 숟가락이 소반 위에 놓여졌다가 다시 밥그릇에 담기곤 하였다. 그 과정에서 밥알들은 유한계급(有閑階級)의 이빨에 의해 씹혀 타액과 더불어 짓이겨지고 위장 안으로 흘러 들어가 십이지장을 거쳐 결국 대장에서 똥이 되었다. 밥을 다 먹고 난 양반은 유한계급의 일상을 누릴 본격적인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는 의관을 가다듬고 ‘이리 오너라’라고 소리지르거나 ‘에헴’하거나 나중에 제사를 지낼 것이었다.

그가 방금 먹은 밥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었다. 밥을 지은 공간은 그가 밥을 먹은 사랑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밥 먹을 사람 스스로 밥을 짓지 않기에 밥을 지을 사람이 따로 필요했고 밥 먹을 사람이 직접 부엌으로 가지 않기에 조리된 음식은 마당이나 대청을 경유하여 사랑방까지 운반되어야 했다. 위계가 분명하여 겸상을 하지 않았기에 상은 한 사람이 사용할 정도의 크기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상을 들어 부엌에서 사랑까지 들어 날라야 했기에 그 상은 커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소반은 소반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노비(奴婢)가 있어야 가능하다. 노비가 필요한 노동을 대신 해주어야 유한계급은 여가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비의 노동력은 비싸지 않아야 한다. 노동력이 비싸지 않아야 유한계급은 싼 값에 여가를 확보할 수 있다. 노동력이 비싸지 않으려면 공급이 충분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대체로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노비이면 그 자식은 노비가 되어야 했다. 노비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노동시간을 늘려야 한다. 그래서 노비는 밤에도 일하곤 했다. 시인 서정주는 노래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풍혈반(風穴盤)이라는 소반은 야밤에 노비가 관청에 음식을 나를 때 사용되었다.

소반이 사용되던 19세기에 사람들은 양반을 없애기보다는 모두 양반이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양반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도 제사를 지내고 족보를 위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화의 20세기를 거쳐 21세기가 되었어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하는 처지는 여전히 대물림된다. 지난달 지하철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다 사망한 19세의 청년 김씨가 남긴 갈색 가방에는 틈이 나면 먹으려고 준비한 컵라면 한 개와 나무젓가락 그리고 숟가락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양반’과 ‘노비’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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