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아이 셔! 즐거운 전율, '신맛'

입력
2017.02.17 04:40
0 0
서울 청담동 한식 레스토랑 '주옥'에서 직접 담가 요리에 쓰는 식초들. 제철 과일과 채소로 철마다 만든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서울 청담동 한식 레스토랑 '주옥'에서 직접 담가 요리에 쓰는 식초들. 제철 과일과 채소로 철마다 만든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국내외 매체가 2017년 음식 트렌드로 일제히 지목한 키워드가 있다. ‘신맛’이다.

사실은 올해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2010년 이후 패권을 쥔 북유럽의 ‘노르딕 퀴진’과 바통을 이어 받은 남미 음식 문화가 세계적으로 약진하면서 ‘신맛 탐닉’이 시작됐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 음식의 짜고 단 입맛을 가볍고 상큼한 입맛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 흐름은 한국에도 당도했다. 한식, 양식, 그리고 최근 급격히 몸집을 불린 디저트 시장도 신맛을 주목하고 있다. 음료 시장에서는 신맛이 이미 거대한 화두다. 신맛이 대체 뭐기에? 다섯 분야 전문가의 서로 다른 시선으로 신맛의 매력을 탐구해 보자.

한식의 신맛: ‘주옥’ 신창호 셰프의 시선

'주옥'의 도미와 독도새우 요리. 강태훈 포토그래퍼
'주옥'의 도미와 독도새우 요리. 강태훈 포토그래퍼

“신기하고 새롭다는 사람도, 무턱대고 싫다는 사람도 있어요.” 서울 청담동 한식 레스토랑 ‘주옥’ 오너 셰프 신창호씨의 말이다. 주옥에선 코스 처음에 식초를 내준다. 취향대로 뿌리는 양념 용도다. 소금이나 후추 대신인 셈이다. 아예 ‘원샷’하는 식초 한 잔도 나온다. 샐러리와 사과, 사과 식초로 만든 새콤한 주스다. 상큼하게 식욕을 돋우는 식전주 구실을 한다. 신 셰프는 신맛을 적극적으로 쓰는 예찬론자다. “신맛은 감칠맛을 상승시켜요. 처음엔 거부감이 들지 몰라도 먹다 보면 중독되는 맛이에요. 김치나 동치미를 통해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맛이고요.”

산미는 주옥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청담동과 신사동을 휩쓰는 한식 레스토랑 붐 속에 지난 5월 개업한 후발 주자로서 ‘개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한식이 가장 큰 특징은 ‘장(醬)’이다. 고추장, 된장, 간장 뿐 아니라 식초 역시 중요한 한식 문화 유산이다. 신 셰프는 주옥을 준비하기 반 년 전부터 초를 담갔다. 제철 채소며 과일을 갈무리해 때마다 초를 담근다. “천연 식초는 속이 편하면서도 입맛을 돋우는 장점이 있어요. 입 안의 다양한 맛을 깔끔하게 끊어주는 역할을 해서 음식을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죠.” 초에 절이는 장아찌도 그의 중요한 요리 재산이다. 겨울엔 풍부한 재료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봄부터는 두릅, 머위순에 죽순까지, 새순이 돋을 때마다 챙겨 장아찌를 담을 생각이다.

도미와 독도새우를 사용한 요리는 유자식초를 넣은 간장에 재료를 아주 가볍게 절여 만든다. 새우장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2분 정도로 짧게 절여 산미가 느껴질 듯 말 듯 가볍다. 접시 전체의 맛도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해산물의 달고 고소한 맛은 먹다 보면 느끼하게 물리는 경우도 있지만, 산미를 이용해 부담스럽지 않은 맛을 만들어 냈다. ‘식초를 주는 별난 레스토랑’으로 시작한 주옥은 ‘신맛을 잘 변주하는 레스토랑’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양식의 신맛: ‘제로 콤플렉스’ 이충후 셰프의 시선

그림 3'제로 콤플렉스'의 고등어 요리. 이해림 객원기자
그림 3'제로 콤플렉스'의 고등어 요리. 이해림 객원기자

“봄에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 서래마을의 네오 비스트로 ‘제로 콤플렉스’ 이충후 셰프는 지금 겨울인 것이 아쉬운 기색이었다. “원래 제 요리는 다양한 허브를 사용해 산미를 냅니다. 소렐, 옥살리스, 레몬타임 같은 허브들이죠. 파트너 관계인 경기 여주의 ‘미영 농장’에서 소량으로 재배하는 것을 받아 쓰는데, 겨울엔 허브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산미를 낼 수 있는 재료는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싱싱한 허브 대신에 케이퍼 등 초에 절인 피클이나 레몬 같은 과일을 사용해 나름 겨울다운 레시피를 짠다. “과일도 즐겨 사용해요. 다 익기 전의 과일이 가진 풋풋한 산미도 매력적이거든요.” 겨울 딸기가 접시에 올랐다. 셰프의 말대로 과하게 달아지기 전의, 단단하고 성긴 신맛을 가진 딸기다. 꿀식초를 이용해 달큼한 맛을 가미한 바삭한 고등어 구이에 딸기의 산미를 곁들인다. 산미는 튀지 않고 다른 맛을 받쳐준다. 맛의 기둥이자 접착제 역할이다. 산미를 중심으로 고등어의 바삭함과 꿀의 상쾌한 단맛이 펼쳐진다.

“양식 레스토랑에서 식사한다는 건 낯선 경험일 거에요. 서양 음식이라 재료는 물론 맛 역시 처음부터 익숙하지는 않죠.” 미식은 결국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맛의 수용체를 진화시키는 과정일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신맛 재료에 대한 탐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의 ‘노마(Noma)’도 처음엔 낯설었어요. 땅에서 나는 생소한 맛을 그대로 사용해 전통적 프랑스 음식과는 너무 달랐고, 허브 등 재료가 가진 산미도 강했거든요.” 하지만 노마는 몇 년 안에 결국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끄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에게 서양 음식의 산미는 낯섦과 익숙함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디저트의 신맛: ‘알테르 에고’ 박준우 셰프의 시선

'오트뤼'의 레몬 타르트. 이해림 객원기자
'오트뤼'의 레몬 타르트. 이해림 객원기자

서울 서촌 ‘오 쁘띠 베르’ 시절부터 박준우 셰프의 레몬 타르트는 ‘아이, 셔’였다. 레몬의 신맛을 과감하게 돌출시킨 그 상큼, 아니 새콤한 맛. 연희동에 낸 새 레스토랑 ‘알테르 에고(Alter Ego)’와 디저트 카페 ‘오트뤼(Autrui)’에도 그 매력적인 산미는 이어진다. 알테르 에고의 프리 디저트인 오미자와 딸기 소르베와 딸기 디저트, 오트뤼의 레몬 타르트가 그렇다.

오트뤼의 레몬 타르트는 그러나 시지만은 않다. “디저트는 원래 ‘치운다’는 의미에요. 식사를 마치며 입맛을 정리하는 의미죠. 그래서 무겁고 달콤한 디저트 레시피가 전통으로 자리 잡았어요.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가벼운 맛의 디저트가 대세가 됐어요.” 2010년대 초반부터 유럽에서 유행하는 디저트 스타일이다.

“신맛과 가장 좋은 조합을 이루는 건 단맛이에요. 설탕, 즉 디저트죠. 신맛에 대해 쓴 한 기사에서 사진을 뭘 썼는지 아세요? 편의점에서 파는 시큼한 벌레 젤리 사진요. 겉에 굵은 설탕 입자가 묻어 있죠.” 결국 맛은 근원적으로 조화와 균형의 문제다. “디저트가 달기만 하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아요. 디저트는 원래 단맛과 다른 맛을 조합시키는 겁니다.” 고소한 피스타치오와 씁쓸한 향의 캐러멜, 시원한 민트 등 디저트엔 다양한 재료가 사용된다. “신맛을 가미한 디저트는 가볍고 달지 않게 느껴져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됩니다.”

커피의 신맛: ‘카페 뎀셀브즈’ 김세윤 대표의 시선

'카페 뎀셀브즈'의 커피와 케이크.
'카페 뎀셀브즈'의 커피와 케이크.

그렇다. 여전히 ‘믹스 커피’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지위를 위협 받고 있기도 하다. 취향을 소비하는 커피 시장에서 다양한 산지에서 난 다양한 맛의 커피가 믹스 커피의 영토를 잠식해 나가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스페셜티 커피’ ‘싱글 오리진’ ‘제 3의 물결’ 등 커피 키워드가 한국에 소개된 것이 이미 여러 해의 일이다.

서울 종로2가의 ‘카페 뎀셀브즈’는 스타벅스 등 커피 체인점이 부상하던 시절 자생적으로 생겨난 토종 커피 브랜드로, 15일로 개업 15주년을 맞았다. “커피의 산미를 드러내려면 커피 관리법과 선도뿐 아니라 사용하는 기계도 고급화해야 하는데, 스페셜티 커피가 주목 받는 덕분에 좋은 기계들이 등장했습니다. 엘 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중미 지역의 커피가 산미를 내죠. 아프리카의 케냐 커피도 좋은 산미를 갖고 있고요.” 김세윤 대표의 설명이다. 과일처럼 부드러운 산미를 가진 커피는 다소 생소할지언정 분명 매력적이다.

김 대표는 산미는 어디까지나 커피 맛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너도나도 산미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산미만 강조된 커피는 있을 수도 없고 맛으로도 훌륭하지 않아요. 커피의 산미도 단맛과 좋은 균형을 이뤘을 때 기분 좋게 느껴지거든요. 커피는 얼마나 고민하면서 세심하게 내리는지가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스페셜티 커피라도 마시는 용도에 맞게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맛을 망치죠.” 김 대표가 손수 내려준 ‘에티오피아 레코 워시드’를 한 모금 마시자 단단한 복숭아 향이 싱그럽게 넘실거렸다. 기분이 맑아졌다.

맥주의 신맛: ‘사우어 퐁당’ 이승용 대표의 시선

'사우어 퐁당'의 사우어 비어인 '오 마이 고제(Oh My Gose)'와 페페로니 피자. 이해림 객원기자
'사우어 퐁당'의 사우어 비어인 '오 마이 고제(Oh My Gose)'와 페페로니 피자. 이해림 객원기자

맥주가 시다면? “상했다고 하겠죠!” ‘비어 퐁당’, ‘퐁당 크래프트 비어’, ‘메이드 인 퐁당’에 이어 ‘사우어 퐁당’을 낸 이승용 대표는 맥주의 신맛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서울 경리단길 ‘사우어 퐁당’은 12월 초 문을 연 ‘사우어 비어(신 맥주ㆍSour Beer)’ 전문점이다. 80여 종류의 병맥주와 10여종의 생맥주가 전부 사우어 비어다. 사우어 비어는 발효 단계에서 숙성을 오래 하거나 유산균을 접종하는 방법 등으로 맥주의 신맛을 강화한 맥주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맥주예요. 신맛을 즐기거나 새로운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은 열광하는 맥주이기도 하죠.”

사우어 비어는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맥주다. 이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 붐 덕분에 맥주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사우어 비어가 재조명 받았다고 말한다.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도 않고 그럴 만한 수요도 없는 맥주예요. 대신 소규모 양조장에서 다채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죠.” 그러나 신맛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여전히 해외에서도 사우어 비어는 마이너 취향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매장은 평일 이른 저녁부터 북적거렸다. “맥덕(맥주 덕후)들만 올 거라고,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차렸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요. 마침 신맛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져 관심 갖는 분들도 많고요.” 사우어 비어로는 벨기에식 람빅(Lambic)과 플랜더스 레드 에일(Flanders Red Ale), 독일식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 고제(Gose) 등이 있다. 1~3년 숙성해야 하는 수고로운 맥주다. 상큼한 향은 와인이나 막걸리를 연상시키고 산미 아래엔 부드러운 단맛이 어우러진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