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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대 프레임에 갇힌 우파, ‘보수 3.0’ 새 비전이 필요하다

입력
2018.06.19 04:40
수정
2018.06.19 15:3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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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주의 개발독재 그늘 짙은 ‘박정희주의’ 보수 1.0 이어 # 박세일의 ‘부민덕국’ 선진화 담론 보수 2.0으로 정권 교체했지만 이명박ㆍ박근혜정부 거치며 소멸 # “안보관ㆍ성장론 등 원점 재검토 지지층 회복할 새 이론 만들어야”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깊고 탄탄하다. 이승만과 김일성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우파 민족주의, 좌파 공산주의간 치열한 대결을 버텨낸 끝에 탄생했다. 해방과 좌우분열, 미국과 구 소련의 충돌을 거쳐오며 한반도 남측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탄생한 이승만의 건국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 ‘보수 1.0’으로 명명할 키워드는 이른바 ‘박정희주의’다. 박정희의 보수는 권위주의 통치 과정에서 남과 북의 체제경쟁을 승리로 이끌며 역사의 승자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앞세운 권위주의ㆍ반공 개발독재의 그늘은 짙었고, 1979년 10·26 사태(박 전 대통령 피격)와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민주화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민은 희생을 치르며 보수의 변화를 명령했다.

민주화 세력이 주축이 된 김영삼 정권이 탄생하면서 보수는 한 단계 진화했다. 세계화를 앞세웠지만 1997년 외환위기라는 실책을 통해 보수의 체질은 급격히 악화했다. 신자유주의로 재무장한 보수는 부민덕국(富民德國)이라는 한반도 선진화 담론을 앞세워 ‘보수 2.0’으로 재탄생 한다. 1, 2기 진보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단절을 뛰어넘어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헌신으로 탄생한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은 보수의 새로운 비전을 국정에 구현하기 보다는, 익숙한 토건 경제ㆍ비선 정치로 일관하며 역사의 바퀴를 뒤로 돌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보수의 귀환에 내심 기대를 걸었던 시민들은 다시 보수를 심판하며 ‘보수 3.0’으로 재탄생할 것을 지금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선진화, 박세일과 함께 사라진 보수 2.0

궤멸 위기에 몰린 보수 정치권이 지금까지 가장 뼈아프게 여기는 대목은 보수 2.0을 주도한 박세일 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월 갑작스레 타계한 점이다. 박 이사장은 보수 100년 역사를 통틀어 보수 이념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한반도 선진화론으로 보수 담론의 일대 혁신을 모색했던 개혁가로 평가 받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의 보수 2.0 비전인 선진화론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세력과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보수 민주화 세력의 화학적 결합을 전제로 하는 보수 담론이다. 성공한 샐러리맨이라는 스토리를 가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수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 보수의 새 장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박세일의 선진화론은 이 전 대통령의 철학없는 기업마인드를 거치면서, 무엇보다 박근혜 시대의 과거 회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소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통치 4년간은 보수 2.0은커녕 시대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보수 1.0으로 퇴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보수 정치권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보수 2.0에 눈을 돌렸다. 박 전 이사장의 선진화론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힘을 합친다면 보수 정권 재창출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무리한 기대였지만 실현되긴 역부족이었다.

박 전 이사장의 선진화론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정책 철학으로 제시한다. 말 그대로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이념이라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과 맞서며 줄곧 보수 개혁을 주창해온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공화주의를 앞세운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박 이사장은 그러면서 ▦교육ㆍ문화 ▦시장능력 ▦국가능력 ▦시민사회 ▦국제관계의 선진화를 5대 핵심전략으로 제시한다. 이를 통해 부민덕국(富民德國)의 선진일류국가를 이룰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진정한 선진국, 진정한 일류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정신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보장되면서 동시에 소프트파워 면에서 국제적으로 신뢰국가, 모범국가, 매력국가가 되는 것, 즉 덕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보수 2.0의 가치는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민주주의ㆍ인권보다 경제성장이 먼저, 박정희의 보수 1.0

박 전 이사장에 앞서 한국 보수를 지탱했던 핵심 이념은 이른바 ‘박정희주의’다. 경제성장이란 국가적 목표를 위해선 인권을 포함한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재벌주도의 성장만능주의는 ‘시장 보수’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권위주의 독재의 명분을 제공했던 반공주의는 ‘안보 보수’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시장 보수와 안보 보수가 보수 1.0을 떠받치는 힘의 원천이었다.

박정희주의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 보수 담론의 주류를 형성해온 권위주의적 부국강병(富國强兵)론을 바탕으로 한다. 박정희주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역사적 종언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 10년 동안 “공익과 사익을 구별하지 않는 약탈적 경제 운영”, “국가정보원 등 권력 기관을 동원하는 권위적 통치”라는 진보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되살아 났다.

물론 박 전 이사장이 제시한 보수 2.0의 부민덕국은 보수 1.0에서 강조하는 부국강병의 21세기형 버전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명박ㆍ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적 단죄를 받는 등 보수 재건의 주역들이 적폐청산의 대상이 된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특히 냉전적 수구적 안보관과 재벌ㆍ대기업 주도의 경제성장론 등 열성적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온 가치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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