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알짜 재산 이미 다 팔아
뒤늦은 자율협약… 지원명분 실종
안이했던 위기관리 방식도 한몫
40년 가까이 국내 해운업을 이끌어 온 양대 국적 해운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중 먼저 유동성 위기를 맞은 건 현대상선이었다. 지난해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판단된 한진해운의 현대상선 합병설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현대상선은 채권단 공동관리(조건부 자율협약)를 졸업하고 회생의 항로로 진입한 반면 한진해운은 침몰 위기에 처했다. 무엇이 두 해운사의 운명을 이처럼 엇갈리게 만들었을까.
해운업계에서는 당장 회사를 돌려야 할 운영자금 확보 여부를 가장 큰 차이로 보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 4월 현대증권을 매각해 1조2,000억원을 마련하며 유동성에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2009년 이후 벌크선 사업부 등 ‘알짜 자산’을 모두 내다 판 한진해운에는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한진해운이 지난 4월 자율협약 신청 시 쥐어짜낸 자체 자구안은 4,112억원에 불과했다.
자율협약을 현대상선(3월 29일)보다 한달 이상 늦게 시작한 것도 한진해운에는 큰 부담이 됐다. 현대상선이 자력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만큼 채권단이 한진해운에만 추가 지원을 해줄 명분이 사라졌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지원 수사가 속도를 내며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원칙론’을 강조하며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한진해운에게는 불운이었다.
한진해운이 줄곧 국적 해운사 1위를 유지한 게 결과적으로는 독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2002년에도 유동성 위기로 자동차사업부 등을 매각해 겨우 법정관리를 피했고, 현대그룹 대북송금 사건 때도 곤욕을 치렀다. 반면 한진해운은 현대상선만큼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큰 위기를 맞은 경험이 없다. 지난 4월 채권단과 조율 없이 불쑥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뒷말이 무성했던 것도 정교하지 못한 일처리의 단면을 보여줬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 직원들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도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설득을 위해 끈질기게 달라붙은 반면 한진해운에선 그 정도까지 성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평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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