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산하기관에 “직원 보내라”.. 금융위 ‘깜깜이 파견’ 논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산하기관에 “직원 보내라”.. 금융위 ‘깜깜이 파견’ 논란

입력
2015.10.23 04:40
0 0

인력 부족, 협업 명분으로 산하기관 인건비 착취 ‘갑질’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파견 근무자 다수

파견 업무도 전화 연결, 자료 요청 등 허드렛일이 상당수

금융위원회가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채 금융 유관기관들의 직원을 무단으로 차출하는 등 파견직 근무를 편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력 부족이나 협업 등을 명분으로 산하 공공기관의 인력을 지원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월적인 지위를 활용해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위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에는 현재 13개 민간기관(국가기관 외 기관 또는 단체)에서 파견 나온 46명의 민간전문가가 재직 중이다. 정원(255명)의 18% 가량이 파견직으로 별도 근무 중인 셈이다. 금융위에 파견을 보낸 기관은 금융감독원(19명)과 한국거래소(5명), 예금보험공사(4명), 산업은행(4명) 등 금융위 산하 공공기관이거나 유관기관들이 대부분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전체 부처의 현황을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금융위의 경우 법무부 산하인 검찰청을 제외하면 파견직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절대적인 숫자보다 더 큰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깜깜이 파견’이다. 금융위 A과의 경우 의원실에 제출한 통계에는 현재 파견 근무자가 3명이지만, 실제로는 5명이 근무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이들은 원 소속 기관에서조차 파견 직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과 관계자는 “긴급한 업무가 발생해 지난달부터 두 명이 추가로 파견돼 근무를 하고 있다”며 “일종의 단기 파견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임용령 등에 따르면 민간전문가 파견제도의 경우 파견 받을 부처의 요청이 있을 경우 5인 이상으로 구성된 파견심의위원회를 거친 후 인사혁신처에 이를 즉각 통보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도 ‘통계 밖 인력’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위는 파견심의위원회가 4개월에 한번씩 열리는 등 불가피한 사유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한다. 갑자기 인력 지원이 필요할 경우 부득이하게 절차를 밟지 않고 파견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금융위는 현재 통계에서 누락된 파견 근무자 실태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한다. 김현 의원실 관계자는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파견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열리고 있는지 등 총체적인 감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의 이 같은 편법 파견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B금융공기업의 관계자는 “직제 상에는 정식 파견 직원으로 분류돼 있지 않지만 1년 이상 금융위 파견을 갔다 복귀한 사람도 있다”며 “다른 공공기관에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파견 근무자의 처우도 문제다. 전화 연결이나 자료 요청 등 대부분 단순 업무에 국한되는 데다, 자료 복사나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금융위 파견 근무를 했던 C공기업 직원은 “어차피 지속적으로 근무를 하는 직원이 아니어서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없는 구조”라며 “업무와 관련된 일은 소속 기관에 자료 요청을 하는 정도고 약속 장소 예약이나 커피 심부름까지 도맡았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산하기관의 인건비를 착취한다는 볼 멘 소리도 터져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파견 근무자의 경우 급여를 원 직장에서 받게 된다는 점에서 산하기관의 인력을 공짜로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감사원 감사에서도 유사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09년 감사원은 금융위가 민간전문가라며 파견 요청한 공공기관의 직원을 인사 발령과는 달리 타 부서의 비서로 근무하게 하는 등의 사례를 다수 적발해 주의 조치를 내렸다. 산하기관 직원 4명을 심의 절차나 통보 절차 없이 최대 136일 동안 파견 근무한 일도 적발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 후 파견 근무자가 다소 줄었다가 다시 슬금슬금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파견제의 편법 운영이 제도적 허점에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전문가 파견제 운영이 사실상 각 부처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탓이다. 현행법 상 정부 부처의 파견제도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는 인사혁신처가 실시하는 인사 감사가 유일하다. 파견심의위원회의 경우 비공무원이 절반 이상 포함돼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부처에 속한 내부위원회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파견직을 편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지만, 46개 부처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감사가 2~3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내부에선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하소연한다. 금융위 정원(255명)이 같은 위원회 조직인 공정거래위원회(53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금융위 한 과장은 “파견 직원을 받게 되면 전문성이 조직 내에 쌓이지 않아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며 “하지만 금융 관련 이슈들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데도 인력은 수년 간 200명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해 일단 파견 근무로 메우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 인력과 조직의 경우 금융감독체계 개편 과정을 거치면서 금융관료들의 권한을 등에 업고 꾸준히 확대돼 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1997년 금융위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 사무국의 인원은 20여명에 불과했지만, 2008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흡수한 금융위원회로 변신하면서 조직의 정원은 205명으로 단숨에 불어났다. 이후에도 금융위는 자본시장조사단이나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 등 꾸준히 조직을 신설하며 인력을 늘려왔다. 행정자치부 한 관계자는 “2012년에 당시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금융위의 파견직 근무자는 39명으로 19개 부처 가운데 가장 많았다”며 “편법적인 파견 근무가 관행처럼 자리잡은 게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