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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시체 구경꾼과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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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시체 구경꾼과 동물원

입력
2018.07.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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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북극해에서 헤엄쳐 다녀야 할 북극곰이 아침부터 열기가 올라오는 아열대의 나라에 와서 왜 이런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나. 픽스히어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북극해에서 헤엄쳐 다녀야 할 북극곰이 아침부터 열기가 올라오는 아열대의 나라에 와서 왜 이런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나. 픽스히어

어김없이 여름이면 뉴스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동물원 동물들의 여름나기를 중계하느라 바쁘다. 특히 북극곰이 영상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과일, 생선이 든 얼음덩어리를 안고 있는 이미지는 명절 뉴스의 귀경 길 차량 화면만큼이나 익숙하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북극해에서 헤엄쳐 다녀야 할 북극곰이 아침부터 열기가 올라오는 아열대의 나라에 와서 왜 이런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나. 북극곰은 몸의 구조가 열을 밖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되어 있어서 거의 모든 나라의 동물원에 갇힌 북극곰은 모두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들 앞에 전시된다.

다행히 앞으로는 얼음덩어리를 안고 있거나 털에 녹조가 잔뜩 낀 채 좁은 우리를 정신 없이 왔다갔다 하는 북극곰을 우리나라의 동물원에서 볼 수 없게 된다. 한국에 마지막 남은 북극곰인 에버랜드의 통키가 나은 환경인 영국의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은 코끼리, 북극곰, 호랑이, 유인원 등은 아파서 치료 목적 등으로 전시를 하지 않는 날이면 왜 없느냐고 항의를 받는다고 한다. 픽사베이
실제로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은 코끼리, 북극곰, 호랑이, 유인원 등은 아파서 치료 목적 등으로 전시를 하지 않는 날이면 왜 없느냐고 항의를 받는다고 한다. 픽사베이

노령인 24살 통키가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좁은 우리에만 갇혀 살다가 말년을 편히 보내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노파심이 생겼다. 동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동물원에 왜 북극곰이 없냐고 항의하면 어떡하지? 실제로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은 코끼리, 북극곰, 호랑이, 유인원 등은 아파서 치료 목적 등으로 전시를 하지 않는 날이면 왜 없느냐고 항의를 받는다고 한다.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 일까.

에버랜드 통키의 이주 소식이 전해질 즈음 서울동물원의 코끼리 칸토가 떠났다. 동물원 동물이 떠났다는 소식은 늘 마음속을 어지럽힌다. 그런데 칸토의 죽음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놀랐다. 평생 우리에 갇혀 지낸 칸토에 대한 미안함을, 발 염증이 코끼리가 동물원에 갇혀서 생긴 병임을 알기에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었다. 동물원에 인기종이 없다고 항의하는 사람들과 칸토에게 애도를 표하는 사람들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지 우리는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지 우리는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일반인만큼 전문가들도 동물원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 현대의 동물원은 오락의 기능보다 종 보전의 기능을 우선으로 내세우며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게 합당한가에 대한 의견이다. 영국 BBC방송 다큐멘터리 <동물원을 폐쇄해야 할까(Should We Close Our Zoos?)>에서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서식지 파괴가 심각해서 침팬지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으므로 침팬지에게 맞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동물원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판다 전문가인 사라 베셀 박사는 판다 프로젝트로 400마리의 새끼가 태어났지만 단 5마리만 방사되어서 그 중 3마리가 살아남았다며 서식지 파괴가 계속되는 한 종 보전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며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지 우리는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20세기 중반까지도 유럽에서는 동물원에 비 유럽권 인간이 전시되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1907년까지 2백 년 동안 시체가 전시되었다. 픽사베이
불과 20세기 중반까지도 유럽에서는 동물원에 비 유럽권 인간이 전시되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1907년까지 2백 년 동안 시체가 전시되었다. 픽사베이

내 의견은 뭘까. 나는 동물원 없는 세상을 원한다. 하지만 죽기 전에는 못 볼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기후부적합종과 광대한 영역이나 특별한 환경이 필요한 코끼리, 북극곰, 돌고래, 유인원 등은 전시하지 말고, 보유 동물 숫자를 줄여서 습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물원으로 변화해야 한다. 동물원은 모든 동물을 전시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관람객도 변화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종 보전 노력은 가치가 있을까,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동물보호단체 등의 노력으로 동물원 동물의 삶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아졌음에도 동물원에는 여전히 동물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쇼를 보며 박수를 치고, 먹이를 넣어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에게만 잔인할까. 불과 20세기 중반까지도 유럽에서는 동물원에 비 유럽권 인간이 전시되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1907년까지 2백 년 동안 시체가 전시되었다. <구경꾼의 탄생>은 파리의 시체 전시 공간인 모르그에 대해 소개하는데 1년이면 백만 명이 찾고, 특히 토막 난 사체 등 흥행 요소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니 인간의 시각적 호기심은 도덕적 책임을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모르그 책임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살과 피가 전시되는 곳이니 매혹적이죠.” 동물원도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곳일까. 때로는 두렵고 신성하게 느껴지는 진짜 살아있는 동물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 그게 동물의 고통에 대한 책임도 잊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것일까.

글ㆍ사진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구경꾼의 탄생>, 바네사 슈와르츠,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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