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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공지능 예술과 아우라

입력
2018.02.02 11:4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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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0년 전 산업혁명으로 기계는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후 기술은 계속 발전했고 이제는 컴퓨터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사람의 지적 능력까지 대체하려고 한다. 적어도 창의성, 감성, 예술성 영역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일 거라고 믿어왔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요리대회에서 우승한 셰프의 레시피를 학습해 2,000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셰프가 시판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본에서는 2015년 도쿄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에 로봇여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돼 화제가 됐었다. 인공지능 분야 선두주자인 구글은 딥 러닝으로 고흐나 렘브란트 화풍을 학습해 진품과 구분이 안 될 정도의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지적 업무를 넘어 인공지능은 예술과 감성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예술과 인공지능의 예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감상하는 사람들이 구분하지 못할 정도라면 인공지능 예술도 엄연한 예술 장르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요리도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데, 인공지능 셰프가 한 요리의 맛이 일품이라면 인간 셰프가 한 요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능력을 넘어서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말했는데, 예술이나 요리 같은 분야에서도 언젠가 특이점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사람이 하건 인공지능 기계가 하건 예술작품이 훌륭하면 그만이고, 사람 셰프건 인공지능 셰프건 요리만 맛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마냥 고민을 미뤄둘 수만도 없다. 고민 끝에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떠올렸고, 나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아우라(Aura)란 예술작품에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한다.

고전 ‘벤야민의 문예이론’에 보면, 산딸기 오믈렛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한 왕이 살았는데, 엄청난 권력과 부를 누렸지만 노년 들어 점점 침울해진다. 어느 날 왕은 궁정요리사를 불러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50년 전 젊은 시절, 선왕은 이웃나라와 전쟁을 했고, 전쟁에서 패하자 선왕과 자신은 도망치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우연히 오두막을 발견했는데 한 노파가 나와 반기면서 손수 부엌에서 요리를 해주었다. 그것이 산딸기 오믈렛이었다. 이 오믈렛을 한 입 먹자 기적처럼 힘이 되살아나고 희망이 샘솟았다. 훗날 이 요리가 생각나 전국을 찾아보았지만 그 노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끝낸 왕은 요리사에게 말한다. 만약 그 노파가 해준 맛 그대로의 산딸기 오믈렛을 요리해 주면 사위로 삼을 거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형에 처할 거라고. 요리사는 뭐라고 답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 교수형리를 불러 저를 죽여주시오.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렛 요리법과 양념과 향료를 훤히 알고 있고 오믈렛을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결코 폐하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숲 속 부엌의 따뜻한 온기,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등 이 모든 분위기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습니다.” 궁정요리사가 말한 분위기가 바로 아우라를 암시한다. 절박함 속에서 만들어진 요리는 똑같은 레시피라 해도 결코 복원될 수 없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예술 간의 차이도 아우라에 있을 것이다. 딥 러닝으로 학습된 정교한 스킬로 만든 인공지능 예술이 결코 인간 예술을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 진정성, 작품을 향한 절박함 같은 것이 아닐까.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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