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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방, 더스트 슈트를 아십니까... 쉽고 재밌는 건축책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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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모방, 더스트 슈트를 아십니까... 쉽고 재밌는 건축책 열풍

입력
2017.12.27 14: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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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준공한 한강외인아파트 단지의 옥외수영장. 1976년 대한주택공사가 홍보용으로 발간한 화보집 ‘주택 건설’에 실린 사진이다. 도서출판 집 제공
1970년 11월 준공한 한강외인아파트 단지의 옥외수영장. 1976년 대한주택공사가 홍보용으로 발간한 화보집 ‘주택 건설’에 실린 사진이다. 도서출판 집 제공

식모방이 처음 등장한 건 언제일까. 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이 판매용 주택에 식모방을 만든 건 1956년 서울 이태원 35평(약 115,7㎡) 외인주택에서다.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직접 달러를 벌기 위해 만든 외인주택과 외인아파트는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애초의 원칙을 깨고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 부유층들에 문을 열었다. 이들이 옥외수영장과 테니스장, 식모방을 보며 선진 문화의 풍요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부잣집뿐 아니라 판잡짓에서도 앞다퉈 식모를 두는 세태를 비판하는 한 잡지의 기사는, 건축이 어떻게 한국인의 욕망을 추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책 ‘거주 박물지’(도서출판 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난달 출간된 이 책은 그 달 마지막 주, 교보문고 기술공학 분야 부동의 1위인 운전면허 시험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서점가에 대중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건축서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박태근 인문MD는 “종수도 확실히 늘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인문ㆍ사회적 시선으로 도시와 건물을 읽는 건축서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며 “기존의 건축도서가 건축공학 혹은 예술서로 분류됐다면 최근 이중 하나에 넣기 애매한 책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6년 대한주택공사 ‘주택건설’에 실린 아파트 거실 모습. 이국적인 소파 뒤로 ‘윌슨’이라고 쓰인 테니스채가 눈에 띈다. 도서출판 집 제공
1976년 대한주택공사 ‘주택건설’에 실린 아파트 거실 모습. 이국적인 소파 뒤로 ‘윌슨’이라고 쓰인 테니스채가 눈에 띈다. 도서출판 집 제공

“애매한 책들”이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건축, 특히 주거용 건물을 문제적으로 돌아보는 책들이다. 판에 박은 듯한 아파트와 빌라에 집중함으로써 건축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했던 시대와 빈약한 건축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역사서나 사회학서라고 하기엔 쉽고, 에세이라 하기엔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 책들을, 도서출판 집의 이상희 대표는 “건축 교양서”라고 불렀다.

2005년 한 중견 출판사에서 건축 편집자로 일하다가 2014년 독립한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건축서는 시장이 거의 없었다. “교양ㆍ인문 편집자들과 원고를 돌려 읽었는데 늘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독자들을 생각해 전문 학술서와 교양서를 분리했지만 미술처럼 고급 교양서가 될 수 밖에 없었죠. 당시 출판사 주간이 건축 쪽에 대중적인 ‘이야기꾼’이 없다며 그런 사람을 발굴하라고 주문한 기억이 납니다.”

고급 교양이었던 건축이 대중 교양으로 자리잡을 낌새를 보인 건 2010년대 들어서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고 ‘땅콩집’ 열풍이 불면서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박정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더 이상 재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다른 주거형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예전엔 일반인들이 건축이란 말을 입에 담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본인이 건축주가 되면 얘기가 달라지죠. 마침 젊은 건축가들이 과거보다 일찍 독립해 단독주택 시장에 뛰어들면서 건축서 분야에 독자와 저자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대구의 상가아파트 한양가든테라스. 아파트에서도 널찍한 마당을 사용할 수 있었다. 민음사 제공
1980년대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대구의 상가아파트 한양가든테라스. 아파트에서도 널찍한 마당을 사용할 수 있었다. 민음사 제공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피어선 아파트.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로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의 원조라 불린다. 민음사 제공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의 피어선 아파트.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로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의 원조라 불린다. 민음사 제공
1976년 10월 18일 동아일보에 실린 미주 아파트 분양광고. 주택과 아파트에서 소위 ‘불란서식’이 크게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서출판 집 제공
1976년 10월 18일 동아일보에 실린 미주 아파트 분양광고. 주택과 아파트에서 소위 ‘불란서식’이 크게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서출판 집 제공

2011년 출간된 박인석 서울시립대 교수의 집 짓기 경험담 ‘아파트와 바꾼 집’(동녁)은 건축서로는 이례적인 6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같은 해 이현욱 건축가와 구본준 건축전문기자가 함께 쓴 ‘두 남자의 집 짓기’(마티)도 흐름을 타고 비슷한 판매고를 올렸다. 새로운 주거에 대한 대중적 각성은 아파트에 대한 비판과 도시를 보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이어져, 박해천 동양대 교수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2011ㆍ자음과모음), ‘아파트 게임’ (2013ㆍ휴머니스트), 박철수 교수의 ‘아파트’(2013ㆍ마티), 유현준 건축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등이 잇달아 나왔다.

올해 나온 책들은 그 바통을 받아 어느 때보다 대중 교양서로의 성격이 강화됐다. ‘거주 박물지’는 식모방 외에도 사라진 ‘더스트 슈트’(1층으로 쓰레기를 떨어뜨리는 통로)의 행방을 묻는 등 아파트 세대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흥미를 끌었다. 10월에 나온 황두진 건축가의 ‘가장 도시적인 삶’(반비)은 60년대 말~70년대 초에 유행했던 상가아파트를 통해 도시 주거의 미래를 조망한다. 모든 사람이 단독주택을 짓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살만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한때 쏟아졌던 아파트 비판서들에 대한 가장 최신의 답변이기도 하다. 민음사 계열사인 반비가 건축과 도시를 다룬 책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향후 건축서의 시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상희 대표는 건축서가 “시각적ㆍ지적 욕망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집 얘기는 늘 재밌으니까요. 최근엔 골목 부활, 도시재생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이 사는 건물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대되고 있어요.”

왼쪽부터 ‘두 남자의 집 짓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가장 도시적인 삶’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왼쪽부터 ‘두 남자의 집 짓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가장 도시적인 삶’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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