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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아베의 진주만 방문

입력
2016.1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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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오랜 고립주의를 벗어던진 결정적 계기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선전포고 없이 이뤄진 일본 연합함대의 폭격으로 진주만의 미국 태평양 함대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군함 7척과 200여대 이상 항공기가 침몰ㆍ파괴됐고 민간인을 포함해 2,400여명이 희생됐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우리가 잠자는 거인을 깨운 건 아닌가”라는 일본 사령관의 독백처럼 미국은 대일 선전포고와 함께 2차대전에 뛰어들었다.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폭투하의 비극을 낳은 태평양전쟁의 서막이다.

▦ 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원폭 책임론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시는 죄악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과 헌화를 하는 데 그쳤다. 20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몬 비극의 책임을 외면하는 건 루스벨트 대통령이 “치욕의 날”이라고 한 진주만 사건의 원한 때문이었을까. 하기야 일본도 원폭투하를 초래한 전쟁책임을 부정하는 마당이니 역사적인 히로시마 방문이 서로의 치부를 덮는 면피용 행사로 전락한 것도 당연하다.

▦ 지난해 4월 반둥회의에서 아베 일본 총리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4개월 뒤 전후 70주년 담화에서도 “지난 전쟁의 행동에 통절한 반성을 표한다”고 했을 뿐 주변국에 가한 반인륜적 전쟁범죄에는 입을 다물었다. 한때 적이었던 미국에 대해서는 달랐다. 미국 상ㆍ하원 합동연설에서 “2차대전 당시 숨진 모든 미국인의 영령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했고, 2차대전 기념물을 참배하면서는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잃어버린 꿈과 미래에 깊이 반성하고 묵념을 올렸다”고 했다. 반성과 사죄는 미국을 향한 것이었다.

▦ 아베 총리가 26~27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진주만을 방문한다. 이번에도 진정한 속죄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새삼스럽지 않다. 그보다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때 미국의 진주만 방문 제안을 거부했던 아베가 왜 수용했는지에 더 관심이 간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서 한 번이라도 진주만 공격을 언급했느냐”며 비난했다. 전쟁의 의미를 흥정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미일의 행태도 봐주기 어렵지만, 트럼프 당선자를 의식한 아베의 책략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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