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기자

등록 : 2016.09.19 04:40
수정 : 2017.06.08 16:51

자존감 잃은 당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도 옳답니다

[오은영의 화해] 내 삶에 나는 없었다

등록 : 2016.09.19 04:40
수정 : 2017.06.08 16:51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여러분의 고민을 상담해 드리는 ‘오은영의 화해’ 코너를 격주 월요일 새로 연재합니다.첫 회는 한번도 자기 삶의 주인이지 못했다는 전업주부 신서연(36ㆍ가명)씨에게 조언해드립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오 때문에 힘겹다면, 인생에서 이 문제만큼은 해결해야겠다는 고민이 있다면 신청해 주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인터넷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urevoir@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담임의 오해ㆍ엄격한 엄마 겪으며

인간관계 어긋날 때 끙끙 앓기만

아이 울어도 화내고 못 가라앉혀

내 속에 어릴 적 엄마 모습이…

원하는 걸 선택하지 못한 삶

신서연=다섯 살 때부터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웠어요. 엄마는 매우 엄격했죠. 연습량을 다 채우지 못하면 손으로 머리며, 얼굴이며, 마구 맞았어요. 한참을 울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던 예닐곱 살의 내 모습. 밤에 자다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무서워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엄마는 무척 감정적인 분이라서 어떤 날은 사랑으로 너무 뜨겁고, 어떤 날은 미움으로 너무 차가웠죠. 따스하던 엄마가 돌연 분노할 때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던 나는 얼어붙었어요. 엄마 옆에 있는 것이 항상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몇 개 틀렸니?” 초등 고학년 때 시험을 보고 돌아온 내게 손님들과 함께 있던 엄마가 물었어요. “전 과목에서 14개요.”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티슈곽이 뒤통수로 날아오더군요. 어이없는 마음, 분노, 수치심. 손님들 앞에서 또 다시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제가 왕따 가해자로 몰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저를 매우 신임하고 예뻐하셨어요. 입학 후 처음 치른 반 배치고사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받았고, 가정환경도 좋았으니까요. 저도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반의 A라는 아이가 간염 보균자인 것이 알려졌습니다. 친구들은 A와 함께 점심을 먹지 않으려고 했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학기 중간에 반 전체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저도 간염 보균자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저를 불러 A를 따돌리고 앞장서서 소문 낸 사람으로 지목하며 “실망스럽다”고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이제 너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며 “오히려 이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상하게도 ‘전 그런 소문을 내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그 오해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끙끙대다가 그냥 그런 아이로 1학년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속수무책입니다.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서툴고 어렵기만 합니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고, 선택의 상황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밀려 제 마음이 원하는 것과 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6개월 전 꾸려진 교회 구역모임이 마음에 들어 온 가족이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는데, 최근 다른 모임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러겠다고 해버렸어요. 속마음으로는 옮기고 싶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옮기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네’라고 대답을 한 겁니다. 남편은 제 태도와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왜 생각 없이 사냐”고 화를 냈어요. 저도 이런 결과가 너무 싫고, 저 자신이 싫습니다. 이런 경험을 매일 반복하고 있죠.

다섯 살짜리 아들의 밤 기저귀 떼는 연습을 하고 있는 요즘.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 화장실에서 마지막 소변을 보게 하는데, 오늘은 유난히 아들이 피곤해 하네요. 모르는 척 누워 다리가 아프다는 둥 일어날 수가 없다는 둥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억지로 일으켜서 화장실 앞에 데려다 놓으니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계속되는 짜증에 점점 화가 치밀면서 분노가 올라옵니다.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매를 가져오고, 협박하면서 혼자 하게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안아서 바지도 내려주고, 오줌만 누게 한 후 다시 안아 요에 눕혀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혼자 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씨름을 하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았습니다. 분이 사그라들지 않아 ‘혼자 한다고 수고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차마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울면서 잠든 아이가 계속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왜 나는 분을 가라 앉히고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수고했다고 말을 못할까.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왜 한번 화가 나면 가라앉히지 못하는 걸까.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에요. 나에게 엄마의 모습이 있는 걸까요? 슬프고 두렵습니다.

자랄 때 자존감 키우지 못한 탓

자신의 육아법에 대한 확신 갖고

내면 마주하며 상처 극복 노력을

“네가 옳다” 남편의 격려는 필수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세요”

오은영=우리는 늘 자녀에게 사랑을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부모가 주려는 사랑과 아이가 받고 싶은 사랑이 다를 때가 많아요.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에 의한 성취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 엄마 때문에, 서연씨 많이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서연씨 어머니에게는 그것이 사랑이었어요. 그녀에게 사랑이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고,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많은 것을 빨리 가르쳐서 잘해내게 만드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냥 잘해내는 정도가 아니라 탁월한 성취와 완성도를 갖추게 하는 것, 그걸 위해 채찍질을 하고 밀어붙이는 것, 그게 자녀를 향한 사랑의 정수라고 생각한 겁니다. 영조 같은 엄마, 사도 같은 딸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마음에 충족감을 느끼는 형태여야 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거예요. “너는 정말 똑똑하구나, 큰일을 해내겠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딸아이에게 “넌 참 예쁘구나” “과일을 야무지게 잘 깎으니 시집 잘 가겠다” 같은 말은 충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아이를, 그리고 부모 자신을 잘 관찰하세요. 그리고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주세요. 부모가 아이 마음에 충족감을 줄 때, 그 순간 아이는 굉장히 행복하고, 그 기억은 평생을 갑니다. 아이의 마음이 편안한 것, 행복감 자주 느끼는 것. 실은 그게 아이를 잘 키우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랑을 못 받았다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자녀들, 나는 너에게 언제나 사랑을 주었다며 원통해하는 부모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형태의 사랑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형태의 사랑을 주면 아픈 겁니다”. 제가 상담하면서 잘 쓰는 말이에요.

부모는 무엇보다도 안전한 대상이어야 하는데, 늘 불안하고 두려웠죠? 서연씨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아요. 서연씨에게는 엄마와의 관계를 이루는 본질적인 구조가 언제나 자기수행에 대해 평가 받고, 지적 받고, 수치심을 느끼는 부끄러운 과정이었어요. 인정 받은 경험이 없죠. 그래서 간염 사건으로 선생님께 오해 받았을 때 그렇게 무력했던 겁니다. 평가가 곧 사랑이라고 생각한 엄마로 인해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흔들었을 때 그 뿌리를 지켜낼 내면의 힘이 없었던 거예요. 언제나 결과중심적인 양육을 받으며 컸기 때문에 중간 과정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죠.

선생님도 ‘어떻게 된 거니?’ 중간 과정을 묻지 않고, 결과적으로 ‘넌 이런 애야’ 단정적으로 평가를 내려버렸어요. “간염이었으면 아팠겠다”, “간염에 대해 이번에 잘 알게 됐지? 일상접촉으로는 괜찮으니까 A한테도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너는 좋은 면이 많아”, 이렇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와의 부정적인 관계를 중요한 사람과 또다시 재경험하면서 그게 깊이 뿌리를 내려 버렸어요. 서연씨는 아마도 ‘내가 변명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어릴 때 체감한 겁니다. 갈등으로 인한 자극들을 그릇의 울림이라고 한다면, 그 울림 자체만으로 너무 힘이 드니까 적극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안 하고 회피하는 거죠.

“네가 옳다” 남편이 도와주세요

한 인간의 자존감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근간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존감은 타인의 잘못되거나 혹독한 평가, 나의 가장 약한 지점을 건드리는 자극, 스트레스, 상처, 배신, 좌절감 등에도 근간이 흔들리지 않아요. 해결되지 않은 심연의 갈등은 어릴 적 중요한 사람과의 핵심적 관계에서 경험되는 것이고, 이 경험이 반복될 때 한 사람의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잡게 됩니다. 그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을 주고요. 그걸 잘 이해하고 파악하려면 현재의 삶과 연결시켜 봐야 하는데, 서연씨는 다행히 이걸 아주 잘하고 있어요.

당신은 지극히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이상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 서연씨가 하는 말과 행위는 누구나 그렇게 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고, 당신은 대체로 옳아요. 서연씨, 마음 같아선 직접 변기에 앉혀주고 싶다고 했죠? 서연씨 마음이 그렇다면 그게 옳은 거예요. 그렇게 하세요. ‘마음 같아선’이란 생각이 들면 그 마음대로 하세요. 일관성 있는 유연성을 원칙으로 세우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배변 훈련을 하지만 오늘은 배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유연하게 바꿔도 괜찮아요.

서연씨가 육아에서 느끼는 불안의 근원은 성장 과정에서 자기확신과 신뢰감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네가 맞아”라는 인정을 받은 경험이 없어 자녀를 키우면서도 확신감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소변 가리게 해야 한다는 불안을 느끼는 겁니다. “네가 열심히 해도 잘 못할 수도 있어, 괜찮아”, “네가 대체로 옳아” 이런 말들을 들었어야 하는데, 핵심적인 애착 관계의 대상들로부터 결정적으로 이게 채워지지 않은 거예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지속적인 ‘교정적 재경험’이 필요합니다. 책을 통해서든, 다른 관계를 통해서든, 건강하고 바람직한 형태로 자기 상처를 다시 경험하는 거예요. 힘들어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고 해야 합니다.

서연씨에게는 이 역할을 남편이 해주면 좋겠어요.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면 “당신은 좋은 엄마야. 오늘은 그냥 좀 편하게 지내봐. 당신은 대체로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교회 모임 같은 선택 문제에도 비판보다는 감정적 지지를 남편이 보여주는 거죠. “다음엔 당신 마음을 솔직히 표현해봐. 그런다고 기분 언짢아 하면 그건 그 사람 문제야. 그거까지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말해주세요. 부부는 감정적 관계이지 논리적 관계가 아니잖아요. 크면서 부모님에게 듣지 못한 “네가 옳아”라는 말, 서연씨는 그 말을 꼭 들어야 합니다.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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