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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여성연대로 되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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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여성연대로 되살아나다

입력
2018.07.1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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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점 탓 영화 보기 힘들자

여성 관객들 SNS서 상영회 추진

릴레이 단체관람 일정 이어져

배우 김준한(앞줄 왼쪽부터)과 민규동 감독, 박자영 프로듀서가 15일 서울 은평구의 한 극장에서 열린 영화 ‘허스토리’ 상영회에 참석해 관객을 만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현우 사진가 제공
배우 김준한(앞줄 왼쪽부터)과 민규동 감독, 박자영 프로듀서가 15일 서울 은평구의 한 극장에서 열린 영화 ‘허스토리’ 상영회에 참석해 관객을 만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현우 사진가 제공

지난 15일 오후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멀티플렉스 극장.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관객이 없었다. 엔딩크레디트에 실린 밴드 자우림의 노래 ‘영원히 영원히’에 귀 기울이며 마지막 여운까지 음미했다. 한참 뒤 극장에 불이 켜지자 빈틈없이 들어찬 400석 규모 객석에서 일제히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화 ‘허스토리’에 보내는 격려와 응원이었다.

이날 상영회는 ‘허스토리’ 팬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단체관람 행사였다. 일면식은커녕 이름도 나이도 서로 모르는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뜻을 모아 상영관을 열었다. 민규동 감독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GV)는 관객의 질문 세례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애초 GV 참석자가 아니었던 주연배우 김준한도 드라마 촬영을 마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와 관객을 만났다.

이른바 ‘총대’를 메고 상영회를 추진한 이는 전북 군산시에 거주하는 채밝음(23)씨. 채씨는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봤고 이후에 한 번 더 보려고 했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상영관이 없어져서 볼 수가 없었다”며 “극장에 요구하느니 차라리 상영관을 직접 여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곧바로 SNS를 만들어 수요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채씨의 SNS 한 줄 소개는 ‘상영관이 없어서 만들어버린 단관(단체관람) 계정’. 채씨처럼 ‘허스토리’ 상영관을 찾아 헤매던 관객들이 팬덤으로 결집했다. 이미 활동하고 있던 ‘허스토리’ 관련 계정들도 관람을 독려하며 힘을 보탰다. 계정이 만들어지고 극장을 대관해 상영회를 열기까지 고작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NEW 제공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NEW 제공

‘허스토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6년간 법정 투쟁을 벌인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위안부 투쟁 초기,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편견에도 용기 있게 맞서 싸운 여성들의 이야기에 여성 관객이 특히 호응했다. 앞서 ‘불한당’과 ‘아가씨’ ‘아수라’ 같은 영화의 경우 배우와 감독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됐다면, ‘허스토리’ 팬덤은 ‘여성 연대’ 성격이 짙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높아진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린다. 채씨는 “여성들이 연대하는 의미까지 나누는 자리여서 더 좋았다는 관람평이 많았다”며 “상영회가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여성 연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상영회에 오지 못한 팬들은 ‘영혼 참가’라는 재치 있는 이름으로 좌석을 구매해 기부했다. 김희애가 연기한 여성사업가 문정숙의 실제 모델인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장을 위한 후원금도 200만원가량 모였다.

‘허스토리’ 팬덤이 온라인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 데는 극장들의 야박한 스크린 배정이 가장 큰 이유였다. ‘허스토리’는 개봉일인 지난달 27일 전체좌석수가 40만개였지만, 개봉 2주차 주말인 7일엔 3만6,000석에 불과했다. 열흘 만에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도 이른 아침이나 심야에 스크린이 배정돼 영화를 보기 힘들었다. 이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라왔다. 채씨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개인의 힘을 모아 구조적인 문제에 대항했던 것처럼, 스크린 독점 문제도 개인들의 의지로 바꿔보자는 의미에서 상영회를 연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허스토리’ 상영회는 릴레이로 이어진다. 15일 단체관람에 참여했던 관객이 ‘총대’를 넘겨받아서 21일에 2차 상영회를 연다. 제작사 수필름에는 각 단체들의 단체관람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다음달까지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민진수 수필름 대표는 “영화 개봉 이후에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열악한 상영 환경에도 영화를 지지해 준 관객들께 죄송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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