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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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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난자를 사용해야 하는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의 난자를 사용해야 하는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국생위)가 지난 12일 전체회의에서 다룬 가장 중요한 안건은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허용 여부였다. 이 연구는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를 이식해 배아를 만들고 이를 배양해 각종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다. 2005년 논문 조작 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바로 이 연구를 했다.

이번에는 2009년 이 연구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차병원 줄기세포팀이 연구 계획서를 냈다. 이날 위원회는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얻는 것이 적법한지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연구 승인을 요청하겠다는 결론을 냈다. 만약 복지부가 승인을 하면 국내에서 7년 만에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허용되는 셈이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로 기대할 수 있는 난치병 치료 효과를 감안하면, 이제 ‘황우석 트라우마’를 떨치고 전향적으로 연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연구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 연구가 여성의 정체성ㆍ건강권과 밀접한 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생위 회의에서도 “난자를 얻으려면 여성의 몸을 호르몬으로 자극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니냐”, “여성 인권의 문제와도 관련 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천주교에서 ‘배아’를 온전한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이 연구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난치병으로 절망에 빠진 많은 환자와 가족을 치유할 수 있어야 윤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도되지 않은 비동결난자(신선난자)의 활용계획이 들어있다. 법적으로 사용은 가능하지만 몹시 까다롭다. ‘난임치료 중 난자를 수정해 줄 사람이 없어 폐기를 요구’한 여성의 신선난자만 가능하다. 여기에 이 모든 과정이 자발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조건을 만족시켜 얻은 신선난자 100개를 쓰겠다는 것이 연구팀의 계획이다. 가정이겠지만, 난임 여성이 절대적 권위를 가진 의사에게 난자 기증을 ‘권유’ 받는다면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국생위가 난자제공의 자발성 여부를 관리감독하라고 했다지만 우리나라에서 난자 제공의 자발성 여부를 감독하는 곳은 질병관리본부의 1개팀(10명)이 전부다. 이들은 관리감독해야할 기관만 430개가 넘어 서류 조사만 하기에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연구를 주도할 이동률 차병원 교수는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줄기세포 연구는 효율성의 싸움”이라며 신선난자에 체세포를 복제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논쟁적인 연구를 “연구의 목적이나 방법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수용한 국생위의 결정은 지나치게 관료적이지 않았을까.

연구의 최종 승인 여부는 복지부의 몫이지만, 최근 포착되는 기류는 심상치 않다. 결국 정부가 논란 많은 이 연구를 승인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실 보건당국이 생명윤리, 건강권, 안전 같은 가치보다는 의료의 산업적 가치, 환자의 편의성, 연구의 효율성 같은 가치를 훨씬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질병의 치료제는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해야하는 3상 실험을 면제해 제품 허가를 내주겠다는 대책이나 화상전화가 달린 자판기를 설치해 약사와 통화한 뒤 일반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등 지난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내놓은 ‘규제혁신 대책’에서 이런 기류를 느끼는 것은 무리일까.

국생위는 지난 회의에서 ‘국가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위협하는 사회 환경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생명존중을 위한 선언문’도 내놨다.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는 복지부 관료, 생명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은 정부 당국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이왕구 사회부 차장
이왕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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