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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모두 일 할 시간에 풍덩… ‘목맥’에 빠진 일본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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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모두 일 할 시간에 풍덩… ‘목맥’에 빠진 일본 아저씨

입력
2018.05.10 16: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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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미 마사유키 ‘낮의 목욕탕과 술’

외근 나와 목욕 후 생맥주 한 잔

40대 아재 영업사원의 ‘소확행’

혼밥 얘기 ‘고독한 미식가’ 후속작

에세이·드라마 이어 만화책 출간

'낮의 목욕탕과 술'의 주인공 우쓰미 다카유키. 사우나 뒤 생맥주 한 잔은 쾌락이 넘쳐나지만 쾌락을 즐길 수 없는 시대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쾌락이다.
'낮의 목욕탕과 술'의 주인공 우쓰미 다카유키. 사우나 뒤 생맥주 한 잔은 쾌락이 넘쳐나지만 쾌락을 즐길 수 없는 시대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쾌락이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연예인스러움’이란 찾기 어려운 중년의 영업사원 이노가시라 고로 아저씨가, 동네 골목 어귀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혼또니 오이시이(진짜 맛있다)’라는 옆 테이블 손님의 호들갑을 “저 ‘혼또니’라는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라는 다소 뜬금없이 비장한 호들갑으로 되받아주면서, 냠냠 쩝쩝 한 그릇 쓱 비우고는 비척비척 걸어나가는 게 전부다. 그 배우, 맛있는 건 맛있는 거대로 잘 먹고 별 연기랄 것도 없이 혼잣말이나 잔뜩 하다 끝나니 참 속 편하게 출연료 챙긴다 싶은, 그 배우가 한국에 떴다고 인터넷이 잔뜩 들끓었다. 대체 저게 뭐라고.

'고독한 미식가' 이노가시라 고로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이 심심한 드라마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방송화면 캡처
'고독한 미식가' 이노가시라 고로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 이 심심한 드라마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방송화면 캡처

이렇게나 ‘혼또니 싱거운’ 스토리가 가지를 쳤다. 이번에는 동네 식당이 아니라 목욕탕, 그리고 맥주다. 빨려 들어갈 준비를 하자. 치명적인 ‘치맥’보다도 더 치명적인, 목이 멘다는 ‘목맥’이니까.

주인공은 실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는 40대 광고영업사원 우쓰미 다카유키. 영업소장의 닦달을 받아가며 영업하러 대도시 구석구석을 누비지만, 어느 날은 공치고 어느 날은 연속 계약이다.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래서 일탈을 한다. 하기야 일탈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나. NR(노 리턴ㆍ사무실 복귀 없이 현지 퇴근) 메시지를 영업소에 던진 뒤 오후 어느 한갓진 시각, 슬쩍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린다. 짧은 시간 온 몸을 충분히 데운 뒤 시원한 ‘나마 비루’ 한 잔을 즐긴다.

이게 전부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아저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술 한 잔 곁들이지 못하는 게 아쉽다 했다. 해서 다카유키 아저씨는 술이라도 좀 근사한 걸 골라 마실 줄 알았더니 생맥주 한 잔이다.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의 후속작인 셈인데, 새삼 뭘 더 기대했는지 읽다가 괜히 죄송스러워진다. 목욕탕과 맥주를 무척 즐기는 원작자의 체험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에세이를 ‘고독한 미식가’ 포맷에 맞춰 변형한 드라마가 제작됐고, 그 드라마가 다시 만화책으로 나왔다.

낮의 목욕탕과 술

TV도쿄,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ㆍ서현아 옮김

애니북스 발행ㆍ144쪽ㆍ9,000원

목욕탕을 발견하면 사족을 못쓰고, 다 일하는 시간에 홀연히 탕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수시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생맥주를 들이킬 땐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다’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라는 진짜 바보 같은 삼단논법을 무슨 주문처럼 끊임없이 외쳐대는 이 40대 아재의 ‘소확행’은 흐뭇하고도 안쓰럽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적당히 뒷담화 까고 시시덕대도 그만이던 안온한 시절은 다 지나갔다. 나 좀 힘들다고, 이제는 그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이 삶 그 자체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아재들을 위한 판타지가 탄생하는 지점은 거기다.

그나마 이런 아재들은 행복하다. 묵직한 삶을 일순간 털어낼 수 있는, 요란스럽지도 별스럽지도 않은 자신만의 취미, 혹은 세리머니가 있다는 건, 진짜 어른이 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잘 잊는 게, 정 안되면 잘 잊는 척이라도 하는 게 어른이다. 그렇게 감질 맛 나던 어른, 막상 되고 보니 생각보다 큰 재미가 없긴 하지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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