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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마지막 팬들까지 돌려보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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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마지막 팬들까지 돌려보낼 건가

입력
2016.09.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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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민운동장의 흉물스런 잔디.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17일 경기 당일 전격 취소됐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상주시민운동장의 흉물스런 잔디.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17일 경기 당일 전격 취소됐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상주상무의 올 시즌 평균 관중은 1,957명이다. 클래식 12팀 중 꼴찌다. 하지만 이 중 90% 가까이가 유료 관중이다. 작년 평균 유료 관중 1,056명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전체 관중은 꼴찌여도 유로 관중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올 시즌 조진호(45) 감독 지휘 아래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6위로 선전하고 있는 것도 관중 증가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흉물스런 잔디로 당일 오후에 경기가 전격 취소된 일은 상주 뿐 아니라 K리그 전체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촌극이다.

원래 17일 오후 4시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상주-인천의 30라운드는 당일 오후 1시 즈음 다음 날인 18일 오후 6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변경됐다.

문제는 잔디였다. 상주는 지난 달 말 운동장을 관리하는 시 측에 잔디 보수를 요청했다. 시는 전문 업체에 맡겨 지난달 28일 홈경기 이후 보수에 들어갔다. 9월 초부터 A매치로 인한 K리그 휴식기라 17일 홈경기 전까지 충분히 보수를 끝낼 수 있다고 봤던 것. 하지만 경기 당일까지 잔디상태는 엉망이었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잔디 업체는 ‘추석 연휴로 보식에 필요한 잔디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댔다고 한다. 구단의 무사 안일한 태도도 황당하다. 구단이 직접 공사를 진행한 건 아닌 만큼 보수가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연휴 기간 제대로 잔디 상태를 체크한 건지 의구심이 든다. 상주 관계자는 “연휴 내내 직원들이 경기장에 나와있었다. 경기는 가능할 것으로 봤는데 전날(16일) 집중 폭우가 결정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금만 빨리 손을 썼다면 인근의 대체 경기장으로 변경하던지 아니면 미리 경기를 취소해 원정 팀 인천이 연휴 기간 교통체증을 뚫고 경기 전날 상주로 내려오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야구와 달리 축구는 천재지변 등으로 경기가 취소되는 일이 거의 없지만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2006년 7월 15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포항-제주의 경기가 당일 취소됐다. 경기장이 포스코 본사 안에 있는데 건설 노조의 파업으로 아예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프로연맹이 다음 날로 연기했다. 이튿날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포항 클럽하우스인 송라 구장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명시설이 없어 경기를 2시간 앞당겼다. 원정 팀 제주가 이를 거부해 몰수패 당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는 FA컵에서도 2006년 7월 12일 수도권 일대에 내려진 폭우로 서울-포항의 경기가 당일 취소됐다. 협회는 경기를 불과 1시간 앞두고 취소 결정을 내려 많은 팬들을 헛걸음 치게 만들었다. 앞선 두 번의 사례는 그나마 경기 취소의 원인은 축구계가 어쩔 수 없는(파업, 폭우) 것이었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비판 받았다. 하지만 이번 상주 사태는 원인부터 명백한 인재다. 구단에 더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숫자는 아니었겠지만 연휴 기간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 시민운동장을 찾으려던 상주 홈 팬들 그리고 왕복 11시간이라는 악 조건을 뚫고 원정 응원을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 60여 명의 인천 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최근 K리그는 많지 않은 관중과 구단의 투자 위축, 특정 구단의 심판 매수 의혹 등으로 가뜩이나 ‘관심 밖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충성 관중’마저 허탈하게 만든 이번 일은 한국 축구의 마지막 팬들까지 집으로 돌려보내는 처사다.

윤태석 스포츠부 기자
윤태석 스포츠부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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