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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새 식구 강아지

입력
2016.09.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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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고향 집에 갔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우리 집 마당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 걸 보니 하루 이틀 그런 게 아닌 듯싶었다. 사연을 알아보니 딱하다. 강아지는 우리 집과 가까운 집에 사는데, 그 집 주인이 지병이 있어 자주 병원을 가는 바람에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런 날은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가 챙겨주는 밥을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 동물도 기르지 않지만, 30년 넘도록 개와 고양이를 마당에서 길러온 어머니로서는 그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 집에 들락거리게 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누구보다 그 강아지를 반긴 건 여섯 살 된 내 아이였다. 단번에 친해진 아이와 강아지는 우리가 고향집에 머무는 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돌아서면 강아지가 우리를 다시 따라오고, 우리가 또다시 강아지를 데려다주는 일을 반복하다가 강아지의 주인과 만났다. 주인은 나도 잘 아는 동네 형이다. 나를 보자 그는 말했다. 자기는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은 상태고, 강아지는 데리고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우리 집에서 좀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에게도 이미 부탁을 해놨다고 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강아지는 덩달아 우리 주위를 뛰어다녔다. 데려와서 저녁을 먹이고, 이름을 지어주고는 아직은 주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주인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는 그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마당에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의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강아지네 집으로 가보니 아이 신발에 코를 대고 잠들어있었다.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니 이제 식구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로부터 우리가 고향집을 방문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아이가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졸라 대는 일이 많아진 덕분에 나는 노부모를 더 자주 찾아뵙는 효자가 되었다. 아이는 강아지가 밥을 먹으러 고향집에 들렀는지 매일 궁금해하고, 가장 좋아하는 색깔도 강아지와 비슷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고향집에 머무는 날이면 강아지는 자기 집에 가지 않고 우리 집 현관문 앞에서 잔다. 서울로 돌아와서 전화를 해보면 강아지는 우리가 떠나온 뒤로 자기 집으로 바로 갔다고 한다.

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강아지들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개가 끊이지 않았다. 쌀쌀한 계절에 어미가 새끼를 낳으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강아지들을 큰 대야에 담아서 방안에서 재웠다. 그러면 마당에 있는 어미는 새끼들이 보고 싶어 낑낑댔다. 그 강아지들을 모두 키울 수는 없으니 한두 달 후에는 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느 해는 추석 직전에 강아지를 팔고 온 날이 있었다. 어머니가 강아지를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대문을 나서면 어미 개는 슬픈 표정으로 주위를 맴돌았다. 한참을 따라오다가 내가 돌멩이를 들어 던지려고 시늉하자 집을 향해 돌아갔다. 시장에서 돌아올 때 어머니의 대야 속에는 제사 음식 재료들과 내가 추석날 신을 새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어미 개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마냥 신난 나는 새 운동화를 꺼내 어미개의 코앞에 내밀며 자랑했다. 어미 개는 고개를 돌리며 그저 내 손등만 핥아댔다. 말 못하는 짐승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나는 아직 어렸었다. 내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있는 것을 보니 마치 내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추석에 들고 갈 부모님 선물을 사러 갔더니 아이가 강아지 선물도 바구니에 담았다. 이 선물을 받는 강아지가 곧 이사 올 집에서 즐거운 추석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서 명절이 주는 설렘을 많이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새 식구 덕분에 내 어린 날의 추석을 다시 불러오게 될 것 같다. 작은 생명 하나가 주는 행복이 이리도 크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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