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영옥(86)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22일 설 연휴 마지막 날임에도 온종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비롯한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최근 정치인 상가에는 같은 진영 쪽 인사만 주로 찾았던 것과 달리 박 여사 빈소에는 고인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의 오랜 정치인생 역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여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인사들이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빈소에서는 김 전 총리와 함께 한 때를 보냈던 인사들이 과거의 좋은 인연을 기억하는가 하면 내각책임제 추진을 비롯해 현재 정치이슈를 논의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한국 현대정치사의 또 다른 한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이날 오전 10시20분쯤 빈소를 찾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조문 후 김 전 총리와 내실에서 대화를 나누며 40분 가량 머물렀다. 김 실장은 김 전 총리에게 “사모님은 건강하신 줄 알았다”고 위로했고, 김 전 총리는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는데, 아주 못 된 병에 걸려가지고 (나보다) 몇 발짝 앞서서 갔다”고 말했다.
‘포스트 JP(김종필)’라 불리는 이완구 국무총리도 오후 2시30분쯤 빈소를 찾아 김 전 총리 손을 잡고 “그제 찾아 뵙는데 갑자기…” 라며 위로했다. 김 전 총리는 최근 설 인사차 자신을 찾은 이 총리에게 “대통령에게 직언하라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일절 입에 담지 말라”며 “박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할 얘기가 있으면 조용히 가서 건의드리고 밖에서는 절대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총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정상이 외롭고 고독한 자리인데 잘 좀 도와드리라”며 박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당부했다. 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는 “내각책임제를 잘하면 (20)17년 (권력을 맡을 수 있다), 그러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다”며 “대통령 단임제, 대통령 책임제 해서는 큰 일 못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효재 전 정무수석과 함께 오후 3시쯤 조문했다. 이날 심대평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 정진석 전 의원 등 충청권 인사들은 번갈아 가며 김 전 총리 옆을 지켰다. ‘DJP(김대중ㆍ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킨 주역이었던 김용환 전 의원은 한 때 소원해진 JP와의 관계에 대해 “내가 한국신당으로 나갈 때 서로 갈라섰지만 김 총재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DJP 연합’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도 트위터에 “여사님은 총리 공관으로, 밤 늦은 시간 신당동 자택으로 총리님을 찾아 뵐 때면 따뜻하게 껴안아 주셨다”고 적었다.
고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인 박상희씨의 장녀이자 박근혜 대통령과 사촌 사이라 박 대통령의 동생인 근령ㆍ지만씨도 빈소를 찾았다. 지만씨 부인 서향희 변호사는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 동행하지 않았고, 지만씨는 저녁까지 빈소에 머물며 친인척 자리를 돌며 지인들에게 인사했다. 지만씨 조문 당시 김 전 총리의 한 측근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동생을 부르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등도 조문했다. 박 대통령과 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이명박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등은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