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위안부 합의 취지 존중이 중요하다

입력
2017.01.11 20:00
0 0

진정한 화해 없는 정치적 합의의 한계

정치공세는 아무런 해결책 될 수 없어

피해자의 명예ㆍ존엄 회복에 힘써야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최근의 부산 소녀상 파문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전제되지 않는 정치적 합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해자인 일본 총리가 피해자인 한국에 되레 “성의를 보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집권 자민당의 2인자라는 사람이 “상대하기 귀찮은 나라”라고 한국을 비하할 지경이니, 양국 사이에 과연 ‘좋은 이웃’관계가 가능한지가 의심스럽다.

사태의 불씨는 2015년 12ㆍ28 합의 때 이미 마련됐음은 누구나 아는 바다.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덜컥 약속한 게 첫 번째 잘못이고,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기라도 할 듯이 ‘최종적ㆍ불가역적’이라는 ‘망각의 합의’를 해 준 게 두 번째 잘못이다. 무엇보다 큰 잘못은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던 대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고 ‘배반의 합의’를 한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부산 소녀상 문제는 강력히 반발할 만하다.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이 합의에 나선 데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은 법적 타결과는 별개로 위안부 문제가 인권차원에서 갖는 폭발력을 두려워한 때문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청구권 협정에서의) 해결책이 미흡해 인도주의적 차원의 보상에 나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잘 말해 준다. 위안부 합의 두 달여 전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조기 타결을 위한 협의 가속화’는 이런 일본의 입장을 전적으로 들어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조기 타결’이란 피해자와 지원단체의 줄기찬 요구인 ‘국가책임, 법적배상’을 포기하고 더 늦기 전에 인도적 차원에서 문제를 매듭짓자는 뜻이다.

두 번째는 한국이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자는 차원이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일본에서 “한번 합의하면 다시는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의 요구로 합의에 ‘최종적ㆍ불가역적’이란 문구가 들어간 이유다.

일본에는 한국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안부에 대한 입장을 바꾼다는 ‘골대 이동론’이 팽배하다. 역대 한일 정부 사이에 오간 수차례의 위안부 협의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다. 김영삼정부 때는 “금전적 보상이 아닌 공식 책임인정과 사죄를 원한다”는 우리 입장에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고,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는 김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입장에 오부치 총리가 직접 사죄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정상회담은 아예 위안부 이견으로 파탄으로 끝났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얼마나 진정성을 보였느냐는 얘기와는 별개로, 언제까지 일본이 사과를 반복해야 하느냐는 논리가 먹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녀상 문제가 적절히 해결되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한다’는 합의 내용이 소녀상 철거를 전제한 것이 아니라는 우리 정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녀상을 또 설치하는 것이 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일로 ‘한국이 한 입으로 두 말 한다’는 일본의 주장이 먹히고,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가 수세에 몰리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아마 일본은 이번이 한국의 버릇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참담하지만,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의 소통 부족이 일차적 원인인 만큼 제2, 제3의 소녀상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딱히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마음을 열도록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일본이 피해자를 위한 추가 조치를 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우리 정부의 몫이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합의 내용에 맞게 한국과 일본은 자중하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