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링컨ㆍ처칠ㆍ오바마… 진심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였다

알림

링컨ㆍ처칠ㆍ오바마… 진심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였다

입력
2017.04.08 04:40
0 0

#1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2분짜리 링컨 게티스버그 추도연설

민주주의와 정부 역할서 자주 인용

#2

처칠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등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서 용기 불어넣어

‘록스타처럼 전율 흐르는 연설’ 오바마

국가 분열 통합하고 혁신 이끌어 내

록스타처럼 전율이 흐르는 연설을 했던 명연설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0년 3월 오하이오주 스트롱스빌에서 의료보험 개혁에 관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록스타처럼 전율이 흐르는 연설을 했던 명연설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0년 3월 오하이오주 스트롱스빌에서 의료보험 개혁에 관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치의 무기는 언어다. 설득하고 논쟁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일련의 정치행위에서 언어는 핵심 전력이자 빛나는 유산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오늘날 세계 각국에 이르기까지 연설 능력이 정치인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이유다. “그리스의 군사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데모스테네스의 세 치 혀 끝은 두렵다.” 그리스 최고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BC 384-322)를 두고 마케도니아의 적장 필립 왕이 했다는 이 말은 정치에서 연설의 치명적 중요성을 입증한다.

짧지만 강렬한, 진심의 힘

역사에 남은 명연설은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에서 주로 나왔다. 언어는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곧 세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미국 제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이 꼽힌다. 남북전쟁 최후의 결전장이었던 게티스버그의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링컨은 전몰병사들을 위해 그 유명한 “87년 전 우리 조상은 자유에 기반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를 받드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로 시작하는 추도연설을 시작했다.

“세계는 여기서 쓰러진 용사들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싸운 사람들이 지금까지 훌륭하게 추진해온 그 미완성의 사업에 몸을 바쳐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 그 대사업이란 명예로운 전사자들이 최후까지 온 힘을 다하여 싸운 대의에 우리가 더욱 더 헌신해야 한다는 것, 이들 전사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맹세하는 것, 이 나라를 하느님의 뜻으로 자유의 나라로 탄생시키는 것,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몇 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준비했던 고작 2분짜리 이 연설은 당대 최고의 웅변가였던 주연설자 에드워드 에버렛의 2시간짜리 연설을 역사에서 삭제하며, 지금까지도 민주주의와 정부 역할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천둥과도 같은 박수갈채와 벅찬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이 연설은 전 생애를 통해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보여준 진심의 힘을 확인시켜 주었다.

화려한 수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전쟁의 도탄과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화려한 수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로 전쟁의 도탄과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란한 수사법의 대가들

수사학의 대가였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대(對) 독일 항전 연설(1940)은 힘과 용기가 넘치는 명연설로 유명하다. 반복과 대조, 은유와 역설, 접속사 생략 등을 통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운 그의 연설은 파죽지세의 독일에 맞서 싸우느냐 항복하느냐를 놓고 양분돼 있던 민심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대양에서도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커지는 자신감과 힘을 바탕으로 하늘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우고 땅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대전이라는 대혼란의 시기에 수사의 힘으로 국가를 이끌었던 처칠은 “나에게는 피와 눈물과 땀밖에는 바칠 것이 없다”고 말해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통해 절망과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와 신뢰를 불러일으켰다.

소아마비로 얻게 된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위대한 연설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치인이다. 대공황으로 도탄에 빠진 국가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뉴딜 정책을 주창했던 그는 첫 번째 대통령 취임식(1933)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2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의지를 설파하며 “오직 바보 같은 낙관주의자만 현재의 어두운 현실을 부인한다. 우리의 가장 주요한 임무는 사람들을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고 용감하게 이 문제를 직시한다면 풀지 못한 문제란 없다”고 말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라디오가 급속히 보급되던 당시의 미디어 환경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국민들에게 위기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 토론 형식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당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새로운 형식의 소통방식이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노변정담(fireside chat)이다.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설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설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수락연설에서 인용한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1963)은 은유법과 반복법과 점층법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불후의 명연설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 위에서 노예들의 후손과 노예 소유주들의 후손이 형제처럼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학대와 불공평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미시시피주조차 언젠가 자유와 정의의 안식처로 바뀌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능력을 평가받는 나라에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비폭력 항거를 촉구한 그의 분노에 찬 사자후는 오늘날까지 바이블처럼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세련되고 열정적인 연설로 전 세계의 환호를 받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련되고 열정적인 연설로 전 세계의 환호를 받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열정과 진정성으로 청중을 뒤흔들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대의 키케로’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 최고의 연설가는 미국의 가장 젊었던 두 전직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다. 열정의 화신들로서 국적을 막론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케네디는 문학적 언어와 세련된 몸짓을 통해 외치는 연설이 아니라 청중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연설로 새로운 시대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혁신적 외교정책으로 냉전체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던 이 뉴 프런티어의 기수는 그 유명한 대통령 취임사(1960)를 통해 평화를 향한 변화에의 참여를 촉구했다.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 세계의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우리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하지만 전문가들이 꼽는 케네디 최고의 연설은 베를린장벽으로 갈린 서베를린을 방문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며 독일어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외친 1961년 연설이다. “2000년 전 사람들이 긍지를 가지고 하던 말은 ‘나는 로마 시민입니다’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Ich bin ein Berliner’입니다. …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이 도시가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 나라와 유럽 대륙의 평화와 희망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자유인들은 어디에 살고 있든 베를린 시민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나는 ‘Ich bin ein Berliner’라는 말에서 마음 속 깊이 긍지를 느끼는 바입니다.” 서베를린 시청광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폭발했다.

2009년 1월 취임 연설에 앞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 1월 취임 연설에 앞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모든 명연설의 역사를 하나로 체화한 21세기의 웅변가로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오롯하고 우뚝하다. 그의 비판자들은 오바마가 미국 출생이 맞느냐는 의문은 제기했지만, 그가 미국 전통에 충실한 레토릭을 사용한 최고의 연설가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역사회 조직가이자 헌법학 교수였던 이력과 미국에서만 가능한 가족의 역사를 가진 흑인으로서 오바마는 열정과 진정성이 흘러 넘치는 고양된 웅변가였다. ‘록스타처럼 전율이 흐르는 연설가’라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다.

2004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며 전국구로 등판한 오바마는 그 해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검은 미국이 따로 있고, 하얀 미국이 따로 있고, 라틴계의 미국이 따로 있고, 아시안의 미국이 따로 있지 않다. 오직 미국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데뷔 무대를 치렀다. 공화당 지지의 붉은 주와 민주당 지지의 파란 주로, 흑백의 인종으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해야 한다는 신념은 오바마가 재선 대통령으로서 내내 강조한 핵심 메시지였다.

2012년 재선 출마를 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재선 출마를 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케네디 이후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는 변화와 혁신의 기수였다. 변화와 희망을 역설한 그의 메시지는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2008년 대선 캠페인 슬로건에 집약돼 있다. 민주당 후보였던 오바마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우리가 기다려온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우리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다”라고 연설하면 청중들은 “예스, 위 캔”을 외치며 환호했고, 그 변화에의 열망과 동력이 무명의 흑인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된 제1 비결이었다.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꾸었던 꿈이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살아있다는 데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만일 여기 있다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가진 힘에 여전히 의문을 가진 사람이 여기 있다면, 오늘밤이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2008년 대통령 당선 연설)

미국 독립선언서를 인용하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자명한 진리는 지금도 우리를 안내하는 별”이라고 한 두 번째 취임연설(2013)은 인종차별 철폐뿐 아니라 동성혼 법제화, 불법체류자 조건부 합법화를 골자로 한 이민법 개혁 등으로 평등의 범주를 확대하려는 오바마의 의지를 보여준다.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생김새가 어떻고, 우리의 성씨가 무엇이고, 우리가 어떤 신을 숭배하는가보다 훨씬 더 특별한 것”(2014 이민법 개혁 연설), “혐오발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억압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2012 유엔총회 연설),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시작됐든,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든, 미국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곳”(2015년 동성혼 법제화 환영 연설)과 같은 연설을 통해 그는 보다 널리 강하게 통합된 사회로의 진보를 이끌었다.

2015년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치러진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돌연히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유튜브 화면 캡처
2015년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치러진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돌연히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유튜브 화면 캡처

오바마의 명연설 중 다수는 총기난사나 테러 같은 국가적 비극 속에서 탄생했다. 절묘하게 들어맞는 표현과 진정성으로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그의 연설은 관습적 사고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케네디의 예술적 스타일이 종종 청중의 주의를 분산시킨 것과 달리 오바마의 직설적이지만 은근한 스타일은 청중에게 더 쉽게 다가갔다는 평가다.

청중과의 교감은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났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는 공백 자체가 연설의 메시지가 됐다. 2015년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 장례식에서 연설 도중 갑자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던 연설이 대표적이다. 희생자들을 위로하며 눈을 감고 부르기 시작한 노래에 참석자들은 처음엔 웃으며 당황했지만, 이내 교회는 한 목소리로 합창했다.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던 장면이다.

유머와 위트는 명연설가 오바마에게 매력을 더해준 요소였다. 기자단 만찬 연설에서 영국 윌리엄 왕자의 아기가 목욕가운 차림으로 나타나 악수한 일화를 소개하며 “내가 레임덕이 맞기는 맞나 보다”고 눙치는가 하면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걸 즐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이 쓴 기사를 즐겼다는 뜻은 아닙니다”라는 말로 웃음을 유발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연설은 민주주의자로서 오바마의 신념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연설이었다.

“그게 바로 이 관계의 특징이죠. 여러분들은 아첨꾼이 아니라 회의론자여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칭찬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건물에 있음으로써 백악관은 더 잘 작동했습니다.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언론과 권력의 민주적 관계에 대한 이런 몸에 밴 인식과 태도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2007~2012년 오바마의 연설보좌관이었던 애덤 프랭클린은 CNN과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스피치라이터보다 더 훌륭한 작가이자 링컨과 케네디 이후 백악관의 가장 재능 있는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가 작고 깔끔한 글씨로 고친 연설문 초안은 그 작성자들로부터 “놀랍도록 정확한 편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안의 틀을 회의를 통해 잡고, 초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새로 쓰거나 구조를 확 바꾸기도 했다는 게 전직 연설보좌관들의 전언이다.

시카고 레이크사이드센터에서 고별연설을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시카고 레이크사이드센터에서 고별연설을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그러므로 백악관 역사상 가장 재능 있는 작가 중 하나였던 오바마가 8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하며 대미를 장식한 고별연설이 전 세계의 박수 갈채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이 불후의 명연설에서 재집권에 실패한 암울한 상황임에도 변화와 희망을 역설하고, 헌법의 가치를 설파하며, 국민의 참여를 촉구했다.

“민주주의의 과업은 늘 어려웠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피가 흐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갈 때마다, 한 걸음 물러서는 느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오랜 세월은 전진 운동으로 정의됐습니다. …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일이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참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권력의 추가 어느 방향으로 흔들리는지와 상관없이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 말입니다. … 우리의 헌법은 기념비적이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양피지 조각에 불과하지요. 그 자체로서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힘을 부여하는 겁니다. 참여, 우리가 만들어가는 선택, 우리가 조직하는 동맹을 통해서 말입니다.”

8년간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대통령 오바마의 고별연설은 취임 당시의 명연설과 수미쌍관을 이룬다. 청중은 처음처럼 마지막에도 열광했다. “네, 우리는 해냈습니다(Yes, We Did).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