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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

입력
2017.04.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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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4.7

'잉여 전함'이란 오명의 2차대전 최대 전함 '야마토'가 1945년 오늘 격침됐다. wikiwand.com
'잉여 전함'이란 오명의 2차대전 최대 전함 '야마토'가 1945년 오늘 격침됐다. wikiwand.com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전승국들은 너나없이 전함과 항공모함 증강 경쟁에 나섰다. 더 크게 더 많이…, 군비경쟁은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고, 미국 영국 등 5개국이 급기야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군축협상을 시작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그렇게 체결됐다. 전함 수와 크기를 총 배수량(배를 띄워 밀려나는 물의 중량, 즉 배의 중량) 및 전함당 기준배수량으로 제한한 거였다. 전함 한 척의 기준 배수량 한도는 3만 5,000톤, 총배수량은 일본의 경우 30만톤. 예컨대 배수량 3만톤 규모의 전함을 최대 10척까지 보유할 수 있게 한 거였다. 배가 커질수록 주포 등 함포가 커진다. 함포가 클수록 화력과 방어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게 그 무렵의 상식이었다.

1930년대 침략전쟁에 열 올리던 제국 일본의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大和)호 건조 계획(1934)이, 워싱턴 조약을 무시한 채 극비리에 추진됐다. 전함 크기는 기준배수량 6만5,000톤, 주포도 조약 기준(16인치 이하)보다 큰 18.1인치였다. 야마토는 1940년 8월 진수해 42년 2월 태평양 전쟁에 투입됐다.

하지만 2차대전의 해전 양상은,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함간 함포 공방이 아닌 항공모함 함재기 기동공격으로 변해 있었다.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는 뾰족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연료 등 군수물자 부족 탓에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했다.

오키나와 전투(45.4.1~6.23)가 시작되자 일제는 야마토의 출진을 결정했다. 편도 항해에 필요한 연료만 채운 야마토에는 최대한 긁어 모은 포탄 등 화약과 군인 3,300여 명이 승선했다. 돌아오지 못할 항진을 시작한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미 함대를 격파한 뒤 오키나와 섬 앞바다에 좌초해 해안포대가 되라’는 거였다.

하지만 미 항모 USS베닝턴과 호넷은 야마토의 거대 주포로도 미치지 못할 거리에서 함재기로 야마토를 공략했고, 야마토의 대공포는 비행기를 잡기에 너무 느렸다. 45년 4월 7일, 전함 야마토는 어뢰와 함재기의 급강하 폭격에 전투 5시간여 만에 항해 불능상태에 빠졌고, 자체 폭발로 큐슈 남서쪽 200km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선 군인 중 포로로 살아남은 이는 269명에 불과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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