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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모르게 미성년 조사… 경찰 인권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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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모르게 미성년 조사… 경찰 인권불감증

입력
2018.04.11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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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착오ㆍ실수ㆍ업무 태만 이유

인권위 권고에도 상황 되풀이

럭비공 10대 극단 상황 몰수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A(18)군은 지난해 3월 서울 관악구 소재 지하철역 인근에서 보이스피싱에 사용할 체크카드를 택배기사로부터 전달 받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19세 미만이라 ‘경찰관이 보호자에게 의무적으로 연락해야 하는’ 소년 피의자(경찰청 범죄수사규칙 211조)임에도, 경찰은 A군을 3시간 조사 후 유치장에 가뒀다.

담당 경찰이 A군 어머니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A군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자 수사규칙을 무시한 채 조사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는 경찰 조사를 받는 사실만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선 보호자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그간 수 차례 제기됐지만 담당 경찰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경찰이 미성년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그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아 방어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의 판단 착오, 실수, 업무 태만 등 이유로 경찰이 보호자 통지 의무를 소홀히 할 때마다 경찰의 낮은 인권의식 수준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3년 3월 부산 소재 B지구대는 후배를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심모(14)군에게 경찰 출석을 통보한 후 5시간 넘게 조사하면서 보호자에게 아무런 사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 해명은 “심군에게 자진 출석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부모에게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1월 경기 소재 C파출소는 관내 금품 갈취 신고가 접수되자 현장에서 가해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신모(15)군을 파출소로 데려가면서 부모에게 사전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가까이 신군을 조사한 경찰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에 부모들은 항의 차원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그때마다 인권위 판단은 한결 같았다. “미성년자가 경찰 조사를 받는데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방어권 침해 행위로 해당 경찰서장에게 직원 직무교육을 권고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세종에서 담배 4갑을 훔쳐 경찰 조사를 받던 고등학생 K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인 사례마저 발생했다. K군 아버지는 “경찰이 부모에게 조사 받는 사실을 제대로 통보만 했어도 아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았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찰이 K군 휴대폰에 ‘엄마’라 저장된 번호로 경찰 조사를 받는 사실을 알렸으나, 실제로 전화를 받은 이는 K군의 부탁을 받은 친구였던 것. 경찰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걸러냈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경찰의 소극적 통보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법률도 아닌 훈령에 명시된 보호자 통보 의무를 모르는 일선 경찰도 있을 수 있어, 관련 규정을 대대적으로 숙지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뒤늦게 경찰은 “수사기록을 입력하는 내부전산망(KICS)에 ‘보호자 통보 여부’를 묻는 팝업 창과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개혁위원회 관계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10대의 심리로 볼 때 인권을 무시하는 경찰의 편의주의가 이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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