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나도 브이로거!] 일기를 수만명씩 구독… ‘나 닮은 이야기’에 꽂혔다

입력
2017.12.13 04:40
16면
0 0

유튜브에 브이로그 9000만개

애독자들 자기 경험에 비춰보며

공감-대리만족하고 위안 얻어

헬스 요령, 영화 추천, 해외 생활 등

일상에 담긴 알짜정보 팁까지

브이로그 유튜버 시드니가 미용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출처=시드니 유튜브
브이로그 유튜버 시드니가 미용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출처=시드니 유튜브

화장실 거울 앞에 민낯의 여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오른손에 들린 건 가위. “충동적으로 도전합니다. 저, 잘할 수 있겠죠”라며 앞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삐뚤삐뚤 잘려 다시 자르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 잘린 머리카락으로 엉망이 된 세면대를 급히 정리하기도 한다. 집에서 혼자 앞머리를 잘라 본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법한 장면이 계속 이어진다.

대학생 장서인(23)씨가 요즘 즐겨 본다는 저 여성의 영상들은 특별할 게 없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먹고 쉬고 등 소소한 일상이 주변 또래 여성을 보는 것 같아 자꾸 눈길이 갈 뿐이란다. 한 가지 더! 주인공이 유학생인지라 영국 현지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장씨는 유명인도 아닌 이 여성의 영상을 아침에 화장할 때도, 저녁에 돌아와 방 정리를 할 때도 습관적으로 틀어놓는다. 장씨를 비롯해 14만명이 애독하는 영상의 주인공은 ‘시드니’로 더 친숙한 김서윤(25)씨다.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영상 콘텐츠를 요즘 젊은이들은 브이로그(V-log)라고 부른다.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 합성어로 블로그에 일기를 쓰듯 영상으로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콘텐츠다. 12월 기준 유튜브에 올라온 브이로그 영상은 약 9,000만개에 달한다. 미국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브이로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국내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김씨 같은 파워 브이로거(V-loger)도 생겼다.

브이로그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촬영 장비도, 빼어난 외모도,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 치우는 묘기도 필요 없다. 휴대폰 카메라와 그 앞에 설 용기만 있다면 당신도 ‘주연 배우’가 될 수 있다. 범상한 사람들의 평범한 영상에 굳이 열광하는 이유를 브이로그 애독자 6명의 경험담과 브이로거의 부연을 통해 유형별로 정리해 봤다.

공감형

직장인 고현영(28)씨는 요즘 텔레비전보다 침대에 누워 브이로그 보는 시간이 늘었다. 유명 연예인의 리얼리티 예능보다 일반인들의 일상이 위화감도 덜하고 훨씬 와 닿기 때문. 고씨는 “즐겨보는 ‘유트루’의 브이로그엔 퇴근시간 붐비는 지하철에 오르거나 부은 얼굴로 치킨을 시켜 먹는 등 ‘리얼’한 모습들이 그대로 등장한다”며 “친한 친구와 실시간으로 영상 통화를 하며 수다를 떠는 기분”이라고 했다. 직장인 박윤지(23)씨는 “‘시드니’가 쇼핑을 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마치 내 모습 같아 친근하다”고 말했다. 브이로그 채널 ‘쭘이지TV’를 운영하는 박주미(26)씨는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나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브이로그를 통해 고독을 달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의 일상을 엿보면서 위안과 자신감을 얻으니 공감을 넘어 유대감까지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유튜버 쭘이지 티비의 두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쭘이지 티비 유튜브 영상
유튜버 쭘이지 티비의 두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쭘이지 티비 유튜브 영상

대리만족형

취업준비생 이지수(25)씨는 미국에 살고 있는 ‘릴리 가족’의 브이로그를 통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간접 경험하고 있다. ‘릴리 가족’은 한국 여성과 케냐계 미국인 남편이 두 딸을 낳고 살아가는 일상을 담아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 채널. 이씨는 “해외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해 보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그 삶을 대신 살아본 기분”이라고 말했다. 삼수생 장모(21)씨는 단조로운 수험생활의 낙으로 브이로그를 즐겨 본다.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 도쿄에서 쇼핑을 즐기는 모습 등을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브이로거들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혼생활 브이로거 ‘미소너굴’ 정미나(32)씨는 “인기 비결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대리만족 심리”라며 “20, 30대 여성들이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보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유튜버 미소너굴이 남편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있다. 출처=미소너굴 유튜브 영상
유튜버 미소너굴이 남편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있다. 출처=미소너굴 유튜브 영상

정보공유형

헬스가 취미인 대학생 박제홍(24)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 유튜버가 브이로그 영상을 올리기 시작하자 저절로 애독자가 됐다. 박씨는 “운동을 잘 하는 사람들은 평소 몸을 만들 때 어떤 동작을 하는지 궁금해 브이로그를 보게 됐다”며 “처음 보는 동작들은 기억해뒀다가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소소한 팁들은 따로 적어 둔다“고 말했다. 실제 일상에 녹아 있는 정보들이 쏠쏠한 ‘알짜’라는 것이다. 최근 유투버 ‘김갈릭’이 영상에서 자주 거론하고 사용하는 찻주전자를 구입한 대학원생 신지은(25)씨는 “찻주전자 덕분에 수분 섭취량이 많아졌다고 하길래 ‘나도 한번 사용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인상 깊게 읽은 책, 영화를 추천해 줄 때면 잊지 않으려고 따로 적어두는 편”이라고 했다.

브이로그의 인기 비결은 결국 애독자들의 경험담에 녹아 있다. 블로그나 아프리카TV 등으로 차고 넘쳐 이미 레드오션으로 접어든 1인 미디어 시장에서 브이로그는 틈새를 제대로 노렸다. 기존의 선정적이고 인위적인 TV 예능이나 인터넷방송에 질린 시청자들과 일상의 작은 부분들까지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관음 욕구 확대가 새로운 수요층을 형성했고, 발달된 미디어 환경이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어하는 공급자(브이로거)에게 날개를 달아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자라다 보니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중년 세대보다 더한 것 같다”라며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꿈 꿀 수 있게 해주는, 다른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콘텐츠에 끌리게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