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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계절이 머무는 여수 향일암... 봄의 속삭임 들리나요

입력
2016.03.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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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읍 향일암 뒤편 금오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돌출된 지형이 거북 머리를 닮아 정상으로 오를수록 거북 등에 올라탄 느낌을 받는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수 돌산읍 향일암 뒤편 금오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돌출된 지형이 거북 머리를 닮아 정상으로 오를수록 거북 등에 올라탄 느낌을 받는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수 밤바다’를 포기하고 돌산읍 향일암까지 내달렸다. 돌산은 여수에서 섬을 제외하면 가장 남쪽이고, 향일암은 돌산에서도 끝자락이다. 동백과 후박나무 잎사귀는 싱그러운 윤기를 머금었고 먼나무는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으니, 돌산의 가로수는 긴 겨울이 무색하다. 그물망 뒤집어 쓴 ‘돌산 갓’도 푸르름을 더해 아침저녁 영하의 기온에도 여수의 바람결엔 봄 내음 물씬하다.

원효대사가 세운 관음전으로 시작한 향일암은 구례 화엄사의 말사(末寺)다. 그럼에도 해를 품은 사찰답게 일출의 기운을 받으려는 중생들의 발걸음으로 웬만한 대형 사찰 못지않게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절은 육지가 끝나는 바다에서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 중턱, 스러지다 서로 의지하고 버틴 바위덩어리가 내준 옹색한 공간에 터를 잡았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거리는 500m 남짓한데 쉬엄쉬엄 여유롭게 걸으면 20분은 족히 걸린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다.

‘마음이 뚱뚱한 사람은 지나갈 수 없다.’바위 틈이 만든 해탈문.
‘마음이 뚱뚱한 사람은 지나갈 수 없다.’바위 틈이 만든 해탈문.
그림 3 관음전 난간의 거북 장식.
그림 3 관음전 난간의 거북 장식.
향일암을 둘러 보려면 여러 개의 바위굴을 통과해야 한다.
향일암을 둘러 보려면 여러 개의 바위굴을 통과해야 한다.

돌산갓김치를 판매하는 식당 골목을 통과하면 향일암으로 오르는 2개의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은 계단이고 오른편은 계단이 없는 경사로다. 의무는 아니지만 방문객들은 암묵적으로 계단으로 오르고, 경사로로 내려온다. 첫걸음부터 시작되는 계단(이곳 해설사는 398계단으로 설명한다. 방문객들이 알려 준 숫자를 평균 낸 것이라니 정확하지는 않다)을 오르고 올라 중턱쯤에서 해탈문을 지날 때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해탈문은 인위적으로 세운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거대한 바위 2개가 맞붙은 좁은 틈이다. 성인 한 사람 지나기 알맞은 10여 미터 통로는 갈수록 좁아져 ‘마음이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돌산(突山)은 돌산(石山)이다. 향일암에서 바위가 서로 기대 통로를 만든 곳은 이곳 말고도 여럿이다. 원통보전에서 관음전을 오르는 길도, 삼성각으로 나가는 통로도, 절간을 완전히 벗어날 때도 바위굴을 통과해야 한다. 터가 좁은 만큼 절간 건물도 웅장하기 보다는 산자락에 폭 안긴 모양새다. 관음전 앞 안전난간을 장식하고 있는 작은 거북모양 돌 조각은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내려 헤엄칠 듯하다. 향일암 뒷산을 ‘금빛 자라’ 금오산(金鰲山)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상가가 밀집한 부분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땅 모양이 영락없이 거북의 머리 형상이다. 향일암과 금오산에 널린 바위에서도 수많은 거북을 발견할 수 있다. 바위가 깨진 단면이 신기하게도 일부러 조각한 듯 거북등껍질 문양이다.

금오산 정상에 서면 남해와 다도해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금오산 정상에 서면 남해와 다도해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림 6 등산로는 중턱부터 가파른 철제 계단이어서 거리에 비해 힘겹다.
그림 6 등산로는 중턱부터 가파른 철제 계단이어서 거리에 비해 힘겹다.
금오산 바위는 일부러 그려놓은 것처럼 한결같이 거북등껍질 문양이다.
금오산 바위는 일부러 그려놓은 것처럼 한결같이 거북등껍질 문양이다.

거북 형상은 금오산으로 오를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등산로는 향일암에서 나오면 왼편으로 연결된다. 정상까지는 약 800m, 역시 20분을 잡는데 이 물리적 계산에도 가파른 경사도가 빠져있다. 미리 말하면 무릎관절이 좋지 않거나 심폐기능이 약한 사람이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급경사로 시작한 길은 중턱에 이르러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제 계단으로 이어진다. ‘정상까지 200m, 170m, 70m…’, 수시로 나타나는 친절한 표지판은 행군할 때 ‘이제 다 왔어, 힘내’라는 선임들의 격려만큼 얄밉다.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뒤돌아 본 풍경은 고단함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시원하다. 향일암 포구 뒤로 멀리 경남 남해로 연결된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거북머리 왼편으로 돌출된 지형은 마치 앞다리가 헤엄치듯 생동감을 더하고, 등산객은 어느새 거북 등에 올라 푸른 봄 바다를 항해하는 착각에 빠진다.

여수=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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