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6.02.04 20:00
수정 : 2016.02.04 20:00

[황영식의 세상만사] 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록 : 2016.02.04 20:00
수정 : 2016.02.04 20:00

김종인 국보위 전력까지 감싸니

더민주 편가르기 고질병 나았나

위기모면 위한 임시변통은 안돼 나애심의 웅숭깊은 목소리로 듣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장중한 비감(悲感)이 가슴을 때린다.

나애심 특유의 음색 때문만은 아니다. 애틋한 사랑이나 안타까운 이별을 담은 노래 치고는 가사가 지나치게 거창하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광복이나 통일의 기쁨을 반어적으로 노래하는 정도라야 제대로 어울릴 만하다. 그런데 돌연 방향을 틀어 ‘아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로 끝난다. 2절의 ‘성당에 종이 울린다’등과 합쳐지면,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채 새 사랑에게로 가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남에게 하는 주문이라기보다 스스로 더는 지난 일을 돌이키지 말자는 자기 다짐에 가깝다.

어릴 때 어른들 따라 흥얼거리며 이 노래를 배웠고, 세상물정 알고 난 뒤로 술이 거나해지면 나지막이 읊조리며 원인 모를 서러움에 젖었다.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설 ‘춘희(椿姬)’나 ‘마농 레스코’의 여주인공들처럼 ‘과거 있는’ 여인에 대한 막연한 연민 또는 공명(共鳴) 원망(願望)이었을 게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 또는 그때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의미로는 사람은 누구나 과거가 있다.

그러나 흔히‘과거가 있다’고 말할 때의 과거는 지난 시간이나 일이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잘못(過誤)나 흉허물을 가리킨다. 삶이 어차피 상처투성이여서 대소심천(大小深淺)의 차이야 있을지언정, 한 두 군데 흉터나 마음의 상흔이 남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인데도 남의 과거만, 그것도 지우고 싶어하는 흉터만 골라서 파헤치려는 게 세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듯, 남의 허물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허물을 덮을 수 있다는 묘한 심리작용의 결과라고 할 만하다.

최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참여 경력을 둘러싼 논란도 다를 바 없다. 김 위원장의 전력(前歷)은 화려하다. 여야를 넘나들며 비례대표로만 4선 의원을 기록했고, 청와대 경제수석과 보건사회부 장관도 지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비대위원장 경력에 이번에 더민주당 비대위원장까지 더했다. 여야가 전력과 성향을 따지지 않고 모시기 경쟁에 나설 만큼 뛰어난 경륜을 짐작하게 한다. 거꾸로 숱한 탈각(脫殼)에 따른 허물이 남게 마련이다. 개중에 대표적인 게 국보위 참여다. 김 위원장이 뭐라고 해명하든, 한국 현대사의 짙은 얼룩에 몸을 담갔다는 사실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더민주 실세들이 그의 이런 허물을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안철수ㆍ김한길 전 공동대표의 탈당으로 당 이미지가 한결 왼쪽으로, 한결 강경하게 협소화한 현실을 타개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그의 장점이 허물보다 훨씬 커 보였을 것이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실용노선을 함께 외쳐온 몇 안 되는 정책통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지층의 외연 확장 못잖게 화급한 과제인 호남민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국보위 전력은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한동안 “후회한 적 없다” “뭐가 문제냐”던 김 위원장이 최근 광주 방문을 고비로 자숙 모드에 접어들었으니, 더민주 실세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릴 만하다.

개인적으로 김 위원장의 영입을 계기로 과거란 과거에 빠짐없이 집착해온 더민주의 과거 강박증이 풀리길 기대한다. 그래야만 그의 영입을 통해 드러내려는 체질 변화 이미지를 유권자의 뇌리에 심을 수 있다. 더민주의 과거 강박증은 협소한 ‘우리끼리’의식과 붙어있다.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유일하게 전국적 경쟁력이 돋보인 손학규 전 대표를 떠밀어 낸 것은 결국 ‘출신 성분’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치역량보다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당 순혈주의’와 과거 강박증을 내던지지 못한다면, 김 위원장의 영입 또한 위기모면용 임시변통일 뿐이다. 더민주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신파조로 다시 들으려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황영식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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