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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추창민 “7년의 밤, 운명의 대물림과 맞선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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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추창민 “7년의 밤, 운명의 대물림과 맞선 분투”

입력
2018.04.04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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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7년의 밤’과 영화 ‘7년의 밤’은 같고도 다르다. 소설은 스릴러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영화는 묵직한 필치로 인간 심연을 파고든다. 정유정(왼쪽) 작가와 추창민 감독은 “운명의 폭력성에 맞선 인간의 이야기이자 피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소설 ‘7년의 밤’과 영화 ‘7년의 밤’은 같고도 다르다. 소설은 스릴러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영화는 묵직한 필치로 인간 심연을 파고든다. 정유정(왼쪽) 작가와 추창민 감독은 “운명의 폭력성에 맞선 인간의 이야기이자 피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제가 제목을 잘 지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하하.” 소설 ‘7년의 밤’이 나온지 꼬박 7년 만에 영화 ‘7년의 밤’이 개봉했다면서 원작자 정유정(52) 작가가 쾌활하게 웃었다. 소설 발간 직후에 영화화가 결정됐으니 추창민(52) 감독이 영화에 매달린 기간도 7년이다. “개봉만 하면 영화에서 빠져나올 줄 알았는데 아직 못 나왔습니다.”

2011년 발간돼 지금까지 50만부가 팔린 정 작가의 역작을,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로 1,000만 흥행을 기록한 추 감독이 스크린에 옮겼다. 독자와 관객이 한마음으로 기다렸다. 지난달 28일 개봉해 2일까지 누적관객수 44만명. 아쉬운 성적이지만 정 작가는 “영화를 볼 때마다 감탄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 감독은 “소설의 뛰어난 문학성을 영화에 녹여내려 노력했다”고 화답했다.

소설이 영화의 원작으로서 존재하지 않듯, 영화도 소설의 재현이 아니다. 영화는 두 아버지의 심리드라마로 재해석됐다. 우발적인 사고로 열두 살 여자아이 세령(이레)을 죽인 남자 최현수(류승룡), 딸을 잔인하게 학대했으면서 정작 그 딸이 살해되자 복수를 자행한 남자 오영제(장동건), 그리고 최현수가 숱한 목숨을 수장시키면서 살려낸 아들 최서원(고경표). 댐 건설로 호수가 생긴 세령마을에 어둠과 안개가 짙게 깔리면, 인간 죄의식의 우물이 악마 같은 입을 벌리고, 두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정 작가는 스크린 속 인간의 심연에서 무엇을 봤을까. 추 감독은 문장에 감춰진 진실을 발견했을까.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최현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내면의 폭력성을 끊어내려 몸부림치지만, 결국엔 그로 인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고 파멸하는 인물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현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내면의 폭력성을 끊어내려 몸부림치지만, 결국엔 그로 인해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고 파멸하는 인물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획부터 개봉까지 오래 걸렸다.

추창민 감독(추)=“시나리오 초고를 보고 제작 관계자들이 의아해했다. 복수극이나 스릴러를 예상했을 텐데 나는 심리드라마를 썼다. 시나리오를 숙성시키는 데 2년이 더 필요했다. 배우들이 인물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하니 촬영도 쉽지 않았다. 후반작업에도 그만큼 시간이 걸렸고. 나도 헤어날 수 없는 우물에 갇힌 기분이었다(웃음).”

-추 감독이 영화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나.

정유정 작가(정)=“평소 TV와 영화를 잘 안 봐서, 사실 추 감독을 잘 몰랐다. 뒤늦게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주연배우 이병헌의 팬이 됐다.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 아닌가. 미더웠다.”

-소설은 영화 같고, 영화는 문학적이다.

정=“소설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지성에 호소하는 소설과 정서에 호소하는 소설. 내 소설은 후자다. 독자가 허구의 세계에서 사건을 직접 겪는 듯한 감흥을 느꼈으면 한다. 시체가 저기 있다고 말하지 않고, 독자에게 시체를 훅 던져 주고 싶은 거다. 그러려면 감각의 폭탄을 터뜨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묘사가 많아진다.”

추=“소설 속 모든 장면들이 빼어나다. 텍스트 그대로 묘사하기 어려웠다. 대신 영화에 문학성을 녹여낼 수 있다면 해볼만하겠다 싶었다.”

정=“세령마을이 물리적 옷을 입고 온전하게 세상에 나오길 기대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검푸른 어둠과 안개 속에서도 사물이 뭉개지지 않고 생생하게 보이더라. 하늘의 달까지 연기하는 것 같았다(웃음).”

원작에서 사이코패스로 묘사됐던 오영제는 영화에서 나름의 설득력과 명분을 지닌 인물로 각색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작에서 사이코패스로 묘사됐던 오영제는 영화에서 나름의 설득력과 명분을 지닌 인물로 각색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호수, 안개, 우물 등 물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했나.

정=“핵심은 우물이다. 영화 첫 장면부터 우물이 등장하고 이후 수차례 환기된다. 세령이 현수의 차에 치이는 장면이 소설로 치면 발단인데, 그 장면에도 교차편집으로 우물이 나온다. 우물이 세포 핵처럼 심연에 박혀 있다. 우물은 주인공들을 빨아들이는 운명의 힘을 은유한다고 생각했다.”

추=“주인공 각자가 숨겨둔 비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수와 안개와 우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헤치고 들어가서 들여다보는 거다.”

-선한 가해자와 악한 피해자라는 구도가 관객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추=“정 작가의 소설이 성악설에 기반한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악을 표면에 드러냈을 뿐, 그 바탕에 있는 선이 어떤 작용을 해서 악이 발현되는 거라 해석했다. 최현수가 최선을 추구했으나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원작에 비해 최서원의 비중이 축소돼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정=“소설에서 최서원이 유일한 1인칭 화자라서 주인공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 주인공은 최현수다. 운명의 대물림을 끊어내려는 한 인간의 분투. 작가의 메시지를 구현하는 임무가 최현수에게 맡겨졌다. 최서원은 구원의 상징이다. 최현수가 파멸에 이르면서도 목숨 걸고 지키려 한 그 무엇 말이다.”

-류승룡과 장동건의 연기가 탁월했다.

정=“류승룡은 진짜 최현수 같았다. 죄책감,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이 모두 뒤섞인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심란해지더라. 장동건의 연기엔 몇 차례 놀라기도 했다. 오영제가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듣고 욕설을 내뱉는데 마치 사랑고백처럼 들리는 거다. 내가 선천적으로 악인을 좋아하나(웃음).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배우에게 멱살 잡혀 끌려 다니는 기분이었다.”

추창민 감독(왼쪽)과 정유정 작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며 열연에 만족해했다. 홍인기 기자
추창민 감독(왼쪽)과 정유정 작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며 열연에 만족해했다. 홍인기 기자

-소설 집필과 영화 연출 중에 무엇이 어려운가.

추=“내가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 연출도 하지 않나. 둘 다 어렵지만, 글이 훨씬 어렵다.”

정=“글 쓰는 사람에겐 협업이 용납되지 않는다. 감독은 협업 속에 자기 주장을 설득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상상만 해도 힘겹다.”

추=“그래서 감독에겐 비즈니스 감각이 필요하다. 좋은 감독이 되려면 협상가 기질이 있어야 한다. 협상의 방법은 여러 가지다. 칼이나 말, 혹은 빌기 등이 있다. 나는 주로 비는 사람이다(웃음).”

-차기작 계획은.

추=“한번에 두 가지 일을 못한다. 영화 개봉에만 집중하고 있다.”

정=“신작을 쓰고 있다. 이번엔 판타지 장르다. 침팬지 사육사가 주인공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선택을 주제로 다룬다. 내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은 처음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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