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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유럽에 부는 한국 드라마 열풍

입력
2017.06.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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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가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어를 몰라도 자막에 의지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드라마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도깨비’ ‘스킨십’, 혹은 ‘치맥’ 같은 단어들은 특정 드라마를 통해서 영어에 소개되고 급속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최근 옥스퍼드 영어사전 (Oxford English Dictionary)에서 이 단어들의 출생 배경과 의미에 대해 필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었다. 조만간 이 사전에 실릴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에 목을 매는 우리에게 유럽에 부는 한국 드라마 열풍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우리는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깊은 열등감에 시달렸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우리가 서구에 문을 좀 더 일찍 열지 못한 것이 우리를 뒤처지게 한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빨리빨리’ 서구 문화를 수용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다. 학문 전 영역에 걸쳐, 심지어 국문학이나 국사학 같은 국학조차 서양 이론의 검증을 받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서양 것은 다 좋은 것이고, 우리 것은 다 뒤처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최근 맨부커상을 탄 소설 ‘채식주의자’는 영국에서 상을 탄 이후로 한국에서 그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영미권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꼭 읽어야 할 소설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고 씁쓸한 이야기이다.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많은 과정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문학을 논의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참 마음이 씁쓸하다. 사실 이 책이 한국문학을 대표한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ㆍ로마 신화는 읽고 배우고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의 신화, 전설, 민담은 전근대적인 것 혹은 몰라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우리 자신은 지은이가 누구인지 정도 외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얼마나 아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화하고 알리는 데 과연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영국에 있으면서 한국학을 하는 영국 학생들이 오히려 우리 <삼국유사>의 역사적, 문학적 가치를 찾아서 연구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영어로 되어 있는 번듯한 번역서가 없어서 스스로 번역을 해가면서 말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놀라는 점은, 거의 날마다 누군가 혹은 다수가 드라마 밑에 영어 자막을 다는 번역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유럽의 한국 드라마 열풍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와 문학 속에는 세계인을 사로잡을 문화적 콘텐츠가 다종다양하며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한국 드라마는 내용과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드라마가 한자 문화권, 과거 유교 문화권 나라뿐만 아니라, 영미권과 유럽인의 마음을 두루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학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자학하고, 노벨상에 목을 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 이러한 우리 문학의 역량을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며,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우리의 문학을 가장 맛깔스럽고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제2의 데보라 스미스를 꾸준히 배출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편견과 아집으로 인해 개항을 늦게 한 것은 우리 역사의 실수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세계화가 늦추어 진 것은 우리 먼 선조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알리지 못한 우리와 바로 위 세대의 잘못이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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