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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늘 오메가 아닌 알파다"

입력
2017.06.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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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인 고은.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은(시인ㆍ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공교롭다는 표현이 적절하진 않으나 1970년대는 70년 전태일의 분신자결로 열려서 79년 YH노조 김경숙의 죽음으로 닫힌다. 그 시대를 개발독재시대 혹은 유신체제로 말하면 두 죽음이 상징하는 시대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다. ​당연히 1980년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열린다. 5·18의 한 해답이 87년 6월 항쟁이라 하겠다. 재야 민주화 운동세력의 총 결집, 지칠 줄 몰랐던 학생운동의 대교향악이 되었다. 나는 재야 국민운동본부에 당연히 동참했다. 당시 서울시내 또는 전국의 여러 도시의 호헌철폐시위를 매우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나 역시 서울시와 서울역 앞과 명동 입구와 신세계 백화점 앞 그리고 동대문에서 최루탄을 무릅쓰고 나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6월 10일 오후다. 명동성당 앞 광장의 시위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화이트칼라가 자발적인 용기로 회사에서 일하다 말고 뛰쳐나와 운동의 성격이 시민적·국민적인 의미를 갖추게 됐다. 항쟁이 운동권만의 것이 아니라 전국민적 현상으로 확대되었다. 서울 각 지역에서 활약한 재야인사 여러분들이 작고해서 지금은 모자가 훌렁 벗겨진 그런 공허감이 있다.

우리는 70년대 초기를 대체로 민주주의, 자유, 인권 등의 정치명제를 표방했다. 그래서 첫 국민적 규모의 단체도 민주회복국민회의다. 그야말로 전국적인 편성이었다. 천관우씨가 지도를 놓고 표시해본 결과 한말의 의병 봉기와 거의 일치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민주화도 민족현실의 행방과 연동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재야 각 분야가 결집한 범민주화세력이 모여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회의’를 창설했다.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가 한층 공고할 때였다. 이후 통일의지가 불붙은 것이 5ㆍ18 이후다. 민주화 운동이 곧 통일운동이기도 하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발전한 것도 6월 항쟁의 선물이다. 재야예술계에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을 창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 문학이 특별히 6월 항쟁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간단한 대답이 불가능하다. 다만 하나가 아닌 여럿의 문학을 새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87년 체제를 낳은 6월 항쟁 이래 21세기 명예혁명인 ‘촛불’은 바로 87년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체제이다. ‘현대 세계사의 꽃’이다.

기쁘기도 하지만 무거운 감회다. 민주주의든 뭐든 고귀한 가치의 실현은 언제나 젖먹이 아기로부터 시작한다. 할 일 많은 민족이 한민족이다. 민주주의는 오메가가 아니라 늘 알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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