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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대신 지분 받기로 한 직원은 동업자?

입력
2018.03.0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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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근무ㆍ욕설 업무지시 등

스타트업 근로자 노동착취 못 견뎌

진정서 냈지만 명예훼손 고발 당해

고용부 “근로자 입증 자료 없어”

민노총 “실질적 근로관계 따져야”

A 스타트업 업체 대표 S씨가 메신저를 통해 2016년 9월 11일 오전 3시쯤 직원 김현우씨에게 업무 지시를 하며 욕을 하고 있다. 김씨 제공
A 스타트업 업체 대표 S씨가 메신저를 통해 2016년 9월 11일 오전 3시쯤 직원 김현우씨에게 업무 지시를 하며 욕을 하고 있다. 김씨 제공

지난해 9월 김현우(24)씨는 2014년 12월부터 A 스타트업 업체에서 겪었던 ‘노동 착취’ 경험담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했다. 핵심 사업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대박’의 과실을 나눌 수 있다는 대표 S씨의 반복된 제안에 월급 대신 회사 지분을 받기로 한 뒤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작한 자신을 두고 김씨는 스스로 ‘호구’라고 자책했다. 직원 9명이 방 2개짜리 연립주택에서 합숙을 하면서 주말도 거의 없이 낮 12시쯤 출근해 새벽 4,5시에야 퇴근하는 팍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새벽 3시에 메신저로 온 업무지시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X자식아” 같은 욕설을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는 2년 반 가량이 지나서야 대표의 회유와 폭언을 피해 임금은 물론 약속했던 지분 한 주도 받지 못한 채 ‘야반도주’ 했다. 폭로 후 함께 분노해 준 주변 사람들의 지지에 기대어 지난해 10월 다른 동료 직원 2명과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총 1억8,000여만원) 진정서를 내면서 그는 억울함을 풀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노동청은 A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월급 대신 지분을 택한 김씨와 동료들은 사실상 동업자 관계여서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5일 고용노동부와 김씨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지난 달 김씨 등 3명이 A업체 대표 S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체불 진정에 대해 “법 위반 사항이 없어 사건을 종결했다”는 처리 결과를 통지했다. ▦근로자임을 입증할 (계약서 등) 자료가 없고 ▦지분을 받기로 하고 따로 임금을 정한 적이 없으며 ▦휴일 및 휴게시간 등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아니라 지각, 조퇴, 외출 시 별도 제재가 없었던 점 등이 이유였다. 근로자라기보다는 동업자라고 판단을 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초기 투자 시점에 이익이 없어 임금 대신 지분을 주고 동업 관계를 맺는 일이 빈번한 스타트업 업체들의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노동계에선 실질적인 측면을 외면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한 두명도 아닌 다수의 직원에게 지분을 실제 지급한 것도 아니라 단지 약속했다는 이유 만으로 경영상의 실질적 결정을 함께 하는 동업자 관계가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김씨 같은 업계의 극단적인 착취 사례가 또 생길 가능성이 많은데 고용부가 일반 노동사건의 관행대로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고용부의 이 같은 처분은 ▦사용자의 지휘ㆍ감독 ▦근무시간과 장소의 구속 여부 등을 통해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근로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와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결정할 수 있어 기본급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근로자 지위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씨의 대리인인 이주영 노무사는 “정확한 근무시간 기록이 없어 체불임금 액수 산정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 근로자도 아니라고 판단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며 “도리어 김씨가 S대표로부터 명예훼손 고발을 당해 형사처벌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라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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