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5.10.26 17:55
수정 : 2015.10.27 07:00

[이계성 칼럼] 교과서보다 남북관계

등록 : 2015.10.26 17:55
수정 : 2015.10.27 07:00

전면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 시급

북 체제불안 심리 완화로 풀어야

핵문제 해결 위한 틀도 같은 맥락

26일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2차 작별상봉행사에서 한 상봉 가족이 두 손을 꼭잡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체제는 좀처럼 자신들의 속살을 외부세계에 노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당국의 초청을 받고 입국한 외부인사들에게도 자유롭게 북한 내부를 들여다 보도록 놔두질 않는다.

안내자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외출이 어렵지만 용케 안내자를 따돌리고 시내관광에 나섰더라도 어떻게 알았는지 카메라를 검사해‘정치적’ 문제가 있는 사진은 압수해 간다고 한다. 북 당국은 체제나 이른 바‘최고존엄’관련 사안에는 거의 병적 집착을 보인다.

26일 막을 내린 20차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게 입경수속 때 우리 취재기자들의 노트북 전수(全數) 검사다. 북측 검사관들은 기자들의 노트북을 샅샅이 검사하고는 항의하는 취재진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서”라고 강변했다. 이산가족들이 소지한 태블릿 PC도 예외가 아니었다. 체제에 위해가 될 만한 사진이나 동영상, 문건 등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비사회주의적 문화ㆍ사조나 자본주의 황색바람 침투를 막는다는 명목의 생생한 ‘모기장 치기’ 현장이었다.

가슴 아프게 지켜봤던 이번 이산가족상봉행사는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 해결 시급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꿈에 그리던 피붙이를 만난 기쁨도 잠시, 살아 다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지는 고령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나마 상봉 기쁨을 맛본 이산가족은 전체의 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로또 복권 당첨확률 같은 상봉기회를 속절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들 가운데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80세 이상 고령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이산가족문제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및 주소확인, 상봉정례화, 서신교환 그리고 상호 고향방문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번 상봉행사 기간에 북측 단장인 리충복 북한적십자중앙위원장은 “(향후 남측과) 상시 접촉과 편지 교환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이 이번에 여러 변수가 있었음에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 것을 보면 빈말만은 아닐 성싶어 기대가 없지 않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체제불안 관점에서 접근하는 한 전면적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해외파견 근로자, 북중 국경 왕래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입되는 체제동요 요인 차단에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이산가족 상봉이 대폭 확대되는 상황은 김정은 체제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문호개방과 교류확대로 인한 북측의 체제불안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근본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얘기다.

북한에 개혁개방을 압박하고 인도적 조치를 호소하는 것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북한의 폐쇄적 행태를 규탄하며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의 체제불안심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교환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고향방문까지 허용해도 체제유지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이산가족들의 한 맺힌 소원을 풀어줄 수 있다.

최대 난제인 북한 핵 문제도 북한 정권의 체제불안 심리 관리로 접근해야 실마리가 풀린다. 리비아 가다피 정권 붕괴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김정은 체제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한층 강화시켰을 것이다. 핵은 내부 결속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핵 포기를 압박하고 당근을 제시한들 먹힐 리 만무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김정은 정권이 핵 없이도 체제유지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북한이 예고했던 장거리로켓발사와 추가 핵실험을 유예하고 8ㆍ25합의에 따른 이산가족상봉행사를 마친 지금 박근혜 정부가 그런 틀을 만들어갈 절호의 기회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든든한 소통 통로를 확보했다는 박 대통령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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