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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록 : 2018.06.14 11:20
수정 : 2018.06.14 18:20

[아침을 열며] 저출산과 기성세대 책임

등록 : 2018.06.14 11:20
수정 : 2018.06.14 18:20

2017년 잠정 통계로 1.05를 기록한 합계출산율이 이제 바닥을 찍은 것이고 앞으로는 오를 것이라는 희망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오히려 더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서는 ‘공연히 아이 낳아서 금수저의 노예를 만들어 줄 일 있느냐’라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이 일부의 극단적 사례라고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한 가치관의 격차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 크게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어른이 되면 혹은 어른이 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서 결혼을 청년세대는 더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혼지원을 늘려도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정책효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혼전 순결’을 여전히 강요하지만, 기존의 어마어마한 향락산업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가 우스울 뿐이다. 남녀 관계의 결과인 임신을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린다.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홀로 출산을 결행하는 여성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손가락질하고 자신들의 ‘순결한 아이들’과 격리하려는 행태도 본다. 청소년 비혼모가 다니던 학교를 떠나 다른 지역, 다른 학교로 쫓겨가야 하는 것은 법적ㆍ제도적 미비 때문만이 아니다. 주변의 편견과 낙인 때문이다. 내가 낳은 아이이지만 내 성을 주기 어려운 세상이다. 함께 낳은 아이지만 아빠의 성만 주게 되는 현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가부장적 사고와 가치의 유산이다. 둘이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는 빠지고 여자만 그 결과를 모두 떠안아야 한다.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어려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 등에 여자만 시달린다. 그래서 이제는 신생아 수가 36만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사회에서 10만~20만명의 생명이 임신 중단으로 사라진다. 가부장제가 만든 ‘법률혼→출산’이라는 가치와 규범 틀에서 벗어나는 형태의 출산에는 손가락질만 하는 형상이다. 귀한 생명이 태어나서 지금 늙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노후를 감당해 줄 건강한 세대로 자랄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함께 낳은 아이인데 그 아이의 성은 남자 것이 된다. 혼인신고할 때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성을 부 혹은 모의 것으로 할지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의 대가로서 얻어낸 그러한 법규정 변화가 실제 내가 낳은 아이에게 내 성을 줄 수 있는 환경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혼 준비 과정이 시작되면 안 그래도 불리해지는 여성의 입장에서 내 성 네 성을 놓고 문제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성을 모두 주든, 부 혹은 모의 성에서 주든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지 않다. 누구 집으로 시집가서 그 집안의 씨를 낳아 기르고 그 집안의 귀신이 되라는 식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변화이긴 하다.

그런데 사람들, 특히 청년들의 가치와 생각이 변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세상을 망하는 길로 이끄는 것이라 여기고 갓끈을 고쳐 쓰고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을 할 것인가? 아이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사회 현실에 내 책임은 얼마나 있는지 특히 기성세대, 기득권 집단의 성찰적 반성이 필요하다.

출산과 임신 중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또 출산을 결심했을 때 낙인이 아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해 본다. 낙태죄가 폐지되고 임신 단계부터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이 낳은 아이니까 합의로써 자신들의 성을 자녀에게 줄 수 있는 평등한 부부관계를 희망해 본다. 이런 변화 없이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누구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 아무도 남겨 놓지 않고 갈 것인가? 이제 선택할 때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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