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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01 04:40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십대들이 상상한 슈퍼 히어로, 미국의 신화가 되다

등록 : 2017.07.01 04:40

<17>제리 시걸, 조 슈스터의 슈퍼맨

#1

30년대 만화로 탄생한 원조 영웅

거대한 히어로 문화 장르 열어

공동창작체제 연재물 무한확장

영원히 이어질 현대판 민담설화

#2

국가 부침에 따라 정체성 변화

패권주의 시대 무한 능력 발휘

2011년엔 미 시민권 포기 논란

시대가 기대하는 영웅상 대변

주먹을 앞으로 뻗고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슈퍼맨. 1938년 만화에서 태어난 슈퍼맨은 영웅의 동의어이자 미국인의 자화상이다. 집단창작에 의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덧붙여지고 이어지고 재해석되며 현대의 민담설화가 되었다. 사진은 영화 ‘슈퍼맨 리턴즈’(2006).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46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서른 살의 스테트슨 케네디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백인우월주의단체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 이른바 KKK단에 위장가입 중이었다. 1860년대, 남북전쟁 끝 무렵 노예 해방에 반대하여 생겨난 이 단체는 1920년대에는 회원수가 450만명에 이르고 대낮에 워싱턴을 행진할 만큼 기세가 등등했다. 이들은 흑인에 대한 테러, 살인과 강간까지 벌였지만 백인중심주의 사회의 암묵적인 방치 속에 성행하고 있었다.

케네디는 ‘KKK단은 폭력만 빼고 보면 믿을 수 없이 바보스럽다’는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퍼트릴까 고민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케네디는 한 라디오 드라마와 접촉했다. 바로 1940년에 시작해 당시 미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슈퍼맨의 모험’이었다.

그 주, 여느 때처럼 충성 서약을 하고 나온 KKK 단원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자기 아이들이 머리에 베갯잇을 쓰고 슈퍼맨이 KKK단을 꼭 닮은 적과 싸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정보가 새 나갔는지 자신들의 비밀의식이 슈퍼맨 드라마에 연일 공개되고 있었다.

쪽팔려 죽을 지경이 된 단원들은 탈퇴 러시를 이뤘고 가입신청은 제로로 떨어졌다. 누구 말마따나, ‘슈퍼맨의 적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KKK단은 공포감도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 16편의 슈퍼맨 에피소드, ‘불타는 십자군’(The Clan of the Fiery Cross)은 KKK단의 몰락을 부추긴 사건 중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슈퍼맨이 미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가를 보여준다.

현대에 태어난 민담신화

한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가 소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조롱거리로 여겨졌지만, 초인 영웅이 활약하는 히어로 코믹스는 1930년대 이래 미국 만화산업의 중심이며, 나아가 미국 대중문화의 큰 중심축이다. 대규모 공동창작 체제로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와 스토리작가가 줄줄이 참여하여 무수한 걸작이 쏟아져 나오는 분야이기도 하다. DC코믹스의 ‘왓치맨’(앨런 무어)이 1988년 최고의 SF/판타지에 수여되는 휴고상을 수상했고, 2009년 그래픽노블 스토리 부문이 신설된 이후로는 ‘샌드맨: 서곡’(닐 게이먼)을 비롯한 여러 히어로 만화가 후보작과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국가적인 만화산업이 펼쳐진 계기는 두말할 것 없이 ‘슈퍼맨’이었다.

슈퍼맨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1938년 액션코믹스 표지. DC코믹스 제공

동갑내기 친구였던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십대 시절 교내 신문에 연재했던 ‘슈퍼맨’을 게재할 곳을 찾아 다녔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며 거듭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간신히 1938년 액션코믹스에 게재를 허락받았을 때, 살짝 좌절해 있던 이 젊은이들은 고작 130달러에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회사에 넘겨버렸다. 회사는 물론 작가 자신들조차 꿈에도 성공을 점치지 않은 이 작품은 1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른 잡지들이 월 20만~40만부를 판매하던 당시 액션코믹스의 판매는 100만부에 육박했고, 곧 슈퍼맨을 잡지 표지로 하지 않고는 발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한창 시절의 판매부수는 월 850만부에 다다랐다.

슈퍼맨은 ‘영웅’의 대명사가 되었고 ‘강인한 인간’을 부르는 어휘로 굳어졌다. 두 어린 작가가 만들어낸 슈퍼맨의 특징들, 이중 신분, 변신, 특이한 의상, 초능력은 이후 모든 히어로 만화에 불변의 원칙으로 계승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원작자는 권리를 찾으려는 소송 중 해고되었고, 원작자에서조차 이름이 삭제되었다. ‘슈퍼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동안 조 슈스터는 시력이 악화되어 만화 일을 접고 우편물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고, 파트너를 잃은 제리 시걸도 빈곤한 생활을 했다. DC는 1975년, ‘슈퍼맨’ 영화가 개봉하기 3년 전에야 두 사람에게 연금을 주고 저자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활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조 슈스터의 후손은 남은 빚을 상환해주는 대신 소유권 주장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해야 했다.

불공정하게 시작한 산업이지만, 저작권이 회사에 있는 독특한 구조가 형성되는 바람에 히어로 만화는 무수한 아티스트들과 스토리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공동창작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옛 민담처럼 무한히 이야기가 확장하고 영원히 연재가 끝나지 않고,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는 끊임없이 다시 해석되고 재생산된다. 두 젊은이의 상상에서 태어난 이 영웅은, 이주민이 건설했기에 ‘전통 신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SF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현대의 민담 신화가 된 셈이다.

이 전형적인 영웅의 포즈. 가장 미국적인 영웅을 상징했던 슈퍼맨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다. 사진은 영화 ‘슈퍼맨 리턴즈’(2006).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모든 시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슈퍼맨의 인기에 힘입어 무수한 히어로들이 연이어 생겨나면서, 그 기원이자 중심인 슈퍼맨은 더욱 더 좁은 의미로 ‘가장 전형적인 영웅상’을 강요받게 되었다. 슈퍼맨은 ‘진실, 정의, 그리고 미국의 길’을 신앙처럼 읊조리며 그 시대 미국의 자기상을 드러내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 시대에 슈퍼맨의 힘에는 제한이 없었다. 행성을 힘 하나 안 들이고 줄줄이 끌고 다니거나 재채기로 태양계를 부수고 지구를 입김으로 이동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맨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점점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베트남전 패배와 맞물려 슈퍼맨은 평범한 영웅으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 무적의 영웅을 원하지 않는 대중은 점점 슈퍼맨을 외면했다. 결국 1992년, 슈퍼맨은 로이스와의 결혼식 전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끝으로 코믹스 내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의 세기가 끝났음’을 상징한다고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 사건으로 죽어가던 슈퍼맨의 인기는 치솟았고, 이후 무수한 히어로들이 줄줄이 죽었다 부활하는 새로운 유행을 낳아버렸다. 이 사건 자체로 영웅의 진정한 ‘힘’은 그 강함이 아니라 그 희생에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에 와서는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어 절대 악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성찰을 보여주었는데, 이 이야기의 첫 에피소드 출간일은 11월 8일, 조지 W. 부시가 앨 고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긴 다음날이었다. 3년 뒤에는 슈퍼맨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 떨어졌다는 가정 하에 그려진 ‘레드 선(Red Son)’(마크 밀러)이 출간되었다. 슈퍼맨을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9ㆍ11 테러 이후의 미국의 신냉전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한 나라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가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성찰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남몰래 슈퍼히어로 활동을 하는, 오바마를 꼭 닮은 평행세계의 흑인 슈퍼맨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시대가 바라는 영웅은 누구인가

슈퍼맨에게는 모순적인 정체성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대인 이민자에 의해 태어난 이 캐릭터가 ‘이미 사라져버린 외계행성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절대적인 이방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전체가 또한 이민자의 합으로 구성된 미국의 한 정체성이 아닐까.

2011년 4월 28일, 슈퍼맨 액션코믹스 900호 ‘사건’편(스토리 데이비드 S. 고이어)은 미 주요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한국에도 외신을 통해 소개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슈퍼맨은 이 작품에서 이란의 테헤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시위대편에 섰다. 슈퍼맨이 24시간 무저항의 시위를 하는 새 시위군중은 12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늘어났고 시위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국제 문제가 되자 슈퍼맨은 “진실, 정의와 미국의 방식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세계는 너무 작고 너무 연결되어 있다”며 미국시민권 포기를 선언했다.

미 보수 언론은 실제 인물이 한 일인 것처럼 슈퍼맨을 맹비난했고, DC코믹스 역시 실제 인물을 변명하듯이 ‘슈퍼맨은 최선을 다해 미국의 방식을 구현한 것이다’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그 말 그대로, 슈퍼맨의 행동은 ‘미국의 방식’이 더 이상 미국 안에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같은 해 8월, DC코믹스는 히어로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 시작하는 New52 프로젝트를 열었다. 여기서 슈퍼맨은 이방인의 정체성을 갖고 고독하게 살며, 젊은 혈기로 미국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물로 재해석되었다. 42호 ‘정의’편(스토리 그레그 박)에서는 슈퍼맨이 힘을 다 잃은 채로, 시위 군중 앞에 스스로 몸을 사슬로 묶고 진압 경찰에 무저항으로 맞서는 것으로 과거의 ‘사건’을 작게 재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이 해석은 다시 지워졌고, 시골에서 로이스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슈퍼맨이 새로 자리를 차지했다. 이 또한 시대의 변화를 대변할 것이다.

슈퍼맨은 영생을 갖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다름이 없다. 한 나라를 넘어서 사랑받기 시작한 슈퍼맨은 그 나라의 이상향을 넘어서서, 시대가 어떤 인물을 ‘가장 전형적인 영웅’이라 생각하는가를 보여준다. ‘가장 원형적인 영웅상’을 독자에게서나 작가에게서나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이 인물은, 세상이 어떤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가를 매번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보영ㆍSF 작가

슈퍼맨의 창조자 제리 시걸. 앨런 라이트 촬영

슈퍼맨의 창조자 조 슈스터. DC코믹스 제공

제리 시걸, 조 슈스터

1914년 10월 17일~1996년 1월 28일.

1914년 7월 10일~1992년 7월 30일.

미국의 만화가들. 미국 최초의 슈퍼히어로이자, 대중문화의 가장 유명한 아이콘 중 하나인 슈퍼맨을 창조했다. 제리 시걸은 1992년 윌 아이스너 명예의 전당에, 1993년 잭 커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2005년 캐나다 만화책 제작협회는 조 슈스터 상을 제정하여 그 이름을 기렸다.

<소개된 책>

슈퍼맨: 레드 선

마크 밀러 지음

최원서 옮김

시공사 발행

슈퍼맨 언체인드

스콧 스나이더 지음

짐 리 등 그림

한소영 옮김

시공사 발행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

커트 뷰식 지음

스튜어트 이모넨 그림

최원석 옮김

시공사 발행

샌드맨 서곡

닐 게이먼 지음

J.H. 윌리엄 3세 등 그림

이수현 옮김

시공사 발행

왓치맨

앨런 무어 지음

정지욱 옮김

시공사 발행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프랭크 밀러 지음

프랭크 밀러 등 그림

김지선 옮김

세미콜론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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