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석 기자

등록 : 2018.08.11 10:00

[그렇구나! 생생과학] 에어컨 똑같이 틀었는데… 전기요금은 왜 집집마다 다를까?

등록 : 2018.08.11 10:00

#1

가동, 정지 반복하는 정속형보다 인버터형이 전기 65% 덜 사용

#2

2010년 이전 정속형 제품들 실외기 속 모터 회전수 못 바꿔 설정온도 전후로 ON, OFF 반복 재가동 과정서 전력 소모 커

#3

인버터형은 회전수 조절해 고연비

잠깐 집 비우면 끄지 않는 게 이득

[저작권 한국일보] 에어컨 김민호기자/2018-08-10(한국일보)

지구온난화로 올해 같은 여름철 폭염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면서 서민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요금 걱정이 앞선다. 값비싼 에어컨을 들여놓고도 전기요금 폭탄을 맞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서늘한 공기를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한다. 특히 10년이 넘은 구형 에어컨을 사용하는 가정이라면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기료를 더 내더라도 그대로 구형 제품을 쓸까, 아니면 새로 교체하는 게 나을까. 에어컨에 어떤 과학 원리가 숨어 있는지 알고 나면 결론을 내리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것이다.

우선 에어컨의 기본 원리부터 알아보자. 잘 알려져 있듯 에어컨은 액체가 기체로 바뀌면서 외부에서 열을 흡수하는 ‘기화열’로 주변의 공기를 차갑게 만든다. 알코올을 솜에 적셔 피부에 묻히면 금세 증발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에어컨의 내부에는 상온에서 쉽게 증발하는 냉매가 고압의 액체로 압축돼 있다. 액체 상태의 냉매는 우리가 흔히 ‘에어컨’이라 부르는 실내기의 열교환기(증발기)라는 부품 안에서 기체로 증발하며 열교환기를 차갑게 만든다. 실내기가 흡입한 방 안의 덥고 습한 공기를 열교환기에 통과시키며 공기를 차갑게 해, 다시 실내로 퍼뜨린다. 덥고 습한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일부 기체 상태였던 수분은 액체로 바뀌어 실외로 배출되기에 사실상 냉방과 제습이 동시에 이뤄진다.

열교환기의 열을 흡수한 기체 상태 냉매는 옥외에 설치된 실외기로 이동해 그 안에 있는 압축기를 통과하며 고온 고압의 상태로 바뀐다. 온도가 올라가는 건 압축기가 냉매의 압력을 높이면서 기체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해 분자들이 충돌하기 때문인데, 냉매를 고압 상태로 만드는 이유는 순환력을 높이는 한편 상온에서도 액화를 쉽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 뜨거운 기체 상태 냉매는 라디에이터처럼 생긴 응축기를 통과하며 기기 밖으로 열을 뱉어내고 온도가 낮아지며 부피가 작은 액체 상태로 응축된다. 이 열이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의 정체다.

이렇게 압축된 액체 상태의 냉매는 통로가 좁은 팽창밸브를 통과할 때 속도가 빨라지며 압력이 낮아지면서 쉽게 기화할 수 있는 상태로 바뀐다. 에어컨은 전기의 힘으로 이런 과정을 반복하도록 하는데,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압축기이고, 에어컨의 심장 역할을 하는 압축기를 구동하는 데 가장 많은 전력이 들어간다. 삼성전자 CE부문 생활가전사업부의 황준 연구원은 “에어컨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약 95%는 압축기에서 소비되는 만큼 에어컨 효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구형 에어컨과 2010년 이후 나온 인버터 에어컨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압축기를 구동시키는 모터를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있다. 가정에 공급되는 교류 전기는 주파수가 고정돼 있어서 모터의 속도(회전수)를 바꾸기 어렵다. 구형 에어컨은 교류 전기로만 모터를 회전시켜 고정된 속도로 움직이게 한다. 반면 인버터 에어컨은 모터를 원하는 속도로 변경할 수 있다. 교류 전기를 직류로 만들고 이 직류로 주파수 변경이 가능한 인버터 회로를 연결하면 모터의 회전수를 적절히 변경할 수 있다.

황 연구원은 “인버터 압축기는 실내 온도에 따라 10%~160%로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어 꼭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최소한으로 소모하는 데 비해 구형 에어컨의 정속형 압축기는 100%로 켰다가 0%로 끄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불필요한 전력이 소모되고 효율이 낮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같은 거리를 주행하더라도 인버터는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연비를 높이는 반면 정속형은 급출발과 급제동을 반복하면서 연비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속형 에어컨은 설정 실내 온도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추고, 다시 실내 온도가 올라가면 작동하는 것을 반복한다. 반면 인버터 에어컨은 설정한 온도로 내린 뒤 필요한 만큼의 전기만 소모하면서 이를 유지한다. 인버터 에어컨의 경우 켰다 끄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일정 시간 이상 틀어놓는 것이 전력소모를 줄인다고 알려진 것에 이런 원리가 숨어 있다. 실내 온도를 설정 온도까지 떨어뜨리는 데 큰 전력이 소모되고 이후에는 절전 상태가 유지되는 만큼 처음 켤 때 강풍으로 실내 공기를 설정 온도까지 빠르게 떨어뜨리고 계속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전기료를 절약하는 요령이다. 전문가는 인버터 에어컨의 경우 실외 온도가 40도 가까이 오른 상태에선 6시간 이상 집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켜놓고 다녀오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다만 장시간 사용 시 모터 과열과 과부하로 인한 실외기 화재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인버터 에어컨과 정속형 에어컨의 전력소모량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LG전자가 실내 온도 33도, 실외 온도 35도의 18평 실험실에서 18평형 인버터 에어컨을 설정 온도 26도로 매일 8시간, 한 달간 사용해 보니 전력소모량은 138㎾h(킬로와트시)였다고 한다. 반면 구형 정속형 에어컨을 동일 기준으로 사용할 경우 인버터 에어컨의 2.4배인 336㎾h의 전력이 사용됐다. 에어컨을 제외하고 한 달에 약 300㎾h를 쓰는 가정이라면 같은 조건에서 약 6만원 가량을 절약할 수 있다. 황 연구원은 “에어컨 기기의 전력효율이나 설정 온도, 외부 온도 및 실내 환경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상 고효율 인버터 제품은 2010년 이전에 나온 정속형 제품과 비교 시 효율이 2.9배 높아 전기료를 최대 65%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컨의 제습 기능은 절전에 도움이 될까. 냉방과 제습은 사실상 작동 원리가 같은 만큼 전력 소모에선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다만 제습은 약한 냉방과 같은 기능이어서 장마철처럼 공기 온도는 높지 않으나 습도가 높을 경우 온도는 크게 낮추지 않고 습기만 제거하는 데 사용하면 좋다. 그러나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같은 사용 조건에선 냉방이든 제습이든 실내 공기를 설정 온도까지 빠르게 내린 뒤 절전 운전을 하기에 전력 소모에선 큰 차이가 없다.

에어컨 관련 기술의 핵심도 절전에 있다. 최근에는 초절전 인버터에 인공지능(AI)까지 도입해 한층 더 전기를 아낄 수 있는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강력한 회오리바람으로 찬 공기를 만들어 약 10분 이내에 설정 온도에 도달하게 한 뒤 무풍 운전 방식으로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인 제품을 내놓았다. 무풍 운전은 큰 구멍으로 바람을 내뿜는 것이 아니라 13만 5,000개의 미세 구멍을 통해 냉기가 저속으로 균일하게 나오도록 한다. LG전자는 듀얼 인버터 압축기와 인공지능 플랫폼을 사용해 꼭 필요한 만큼의 전기만 사용하도록 한 제품을 출시했다.

에어컨의 스마트 기능을 활용하면 자신의 주거 환경이나 사용 방식에 따라 전력소모량이 어떻게 바뀌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절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고성능 기기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대유 위니아, 캐리어 등이 만든 가성비 높은 제품도 있다. 어떤 제품을 고르든 장기화하는 폭염과 매년 싸워야 한다면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정 경제에도, 환경에도 이롭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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