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금 파리 시내 상황 ㄷㄷㄷ’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클릭했다. 한 경찰관이 고통으로 몸부림 치며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복면을 한 무장괴한들이 그를 향해 다가가며 소리쳤다. “우리를 죽일 셈이냐?” 경찰관이 무어라 대답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애원하는 어조임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괴한은 경찰관의 머리에 다시 총을 겨누었다. “타당!” 동영상 너머 총소리인데도 지축이 흔들리 듯 강렬했다. 이게 실제 상황이라고?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체 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스르며 그 길로 ‘르 몽드(Le Monde)’ 사이트에 달려갔다.
‘샤를리 에브도’의 참혹한 테러가 일어난 지 이제 막 3시간 반이 지났다고 했다. 르 몽드는 아예 별도의 창을 띄워 단발성 속보들을 시시각각 중계하고 있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이 정제되지 않은 채 날것 그대로 올라왔다. 괴한들은 애초 샤를리 에브도의 주소를 옆 건물로 혼동한 모양이었다. 장총을 들고 헤매던 모습을 목격한 시민의 제보가 올라왔다. 제대로 건물을 찾았을 때 테러범은 한 여인을 붙들고 출입코드를 누르라 윽박질렀다. 샤를리 에브도의 직원인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문을 열어주었다. 괴한들은 곧장 2층 편집국으로 뛰어 올랐다. 살육의 현장을 피해 목숨은 건졌지만 남은 여생 죄책감으로 살아야 할 비극이었다. 신문사에는 평소보다 많은 직원들이 출근해 있었다. 하필 전체 편집국 회의가 열리던 수요일 오전이었기 때문이다. “샤브는 어디 있느냐”며 편집장부터 찾는 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했다. 그리고 곧 연사 되던 총소리, 영화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압적이었다고도 했다.
피비린내 흥건한 속보들을 접하자니 정신의 발이 묶인 듯 현실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몇 개의 약속을 연이어 취소해 버렸다. 그리곤 오랜만에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찾아 보았다. 파리에서 5년을 살았을 적, 신문 가판대에서 종종 마주치던 낯익은 화풍이었다. 광고를 싣지 않고 구독료로만 버티는 언론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모든 종류의 권위에 대항하는 불굴의 의지였다는 것은 그때 미처 몰랐었다. 편집국이 쑥대밭이 된 후에야 그의 진가를 알아보다니. SNS의 프랑스 지인들이 하나 둘 프로필의 사진을 바꿔 달기 시작했다. ‘나는 샤를리다’. 표현의 자유를 엄호하려는 그들의 선언은 전장의 전사와 같이 엄숙하고 경건했다.
다음 날에도 전시상황은 계속 되었다. 어제의 괴한들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파리 교외 인쇄공장으로 숨어 들었고, 새롭게 등장한 또 한 명의 테러범은 유대인 식료품 가게를 습격해 처참한 인질극을 벌였다. 실시간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뉴스를 접하는 것은 세월호 이후 또다시 각성된 고통이었다. 군경의 합동작전으로 테러범들이 모두 피격되었을 때, 그들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무슬림을 자처하다 유대인과 함께 죽었고, 누군가는 언론사를 살육한 후 인쇄공장에서 사살 되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테러범의 정체에 대한 분석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쿠아시 형제가 가입했다는 테러조직이 눈에 박혔다. ‘뷔트 쇼몽 네트워크’ 파리 19구에 위치한 공원의 이름이었다.
순간 가상 속 악인처럼 여겼던 그들이 현실의 평범한 청년으로 살아났다. 근본주의나 언론의 자유 같은 이념의 충돌이 아니라 절대적 직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뷔트 쇼몽 공원 바로 옆에 살았고 매일 그 공원을 관통 했었다. 테러범 역시 뷔트 쇼몽을 기지로 삼아 체력훈련을 하는 등 조직력을 키워왔다 했다. 동네엔 북아프리카에서 온 무슬림 이민자가 많았다. 공원을 산책하던 그때 수많은 쿠아시의 소외와 무력감을 모르지 않았었다. 옆집에 살던 유태계 할머니는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을 서슴지 않고 표현했었다. 건물을 청소하던 알제리계 관리인은 ‘개한테라도 저런 모욕은 주지 않아야 한다’ 분개했었다. 할머니와 관리인은 이번 테러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이 나눌 고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러니 ‘내가 샤를리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선언의 이면에는 이념의 반목이 아니라, 경험적 직관의 충돌이 서려있을지 몰랐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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