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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원탁의 낭인(浪人)들

입력
2017.03.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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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초 켈트족을 이끌며 게르만의 침략을 막았다는 전설 속 영웅 아더왕 이야기는 서양 판타지 문학에 영감을 불어넣은 원류로 꼽힌다. 그의 역사적 실존여부는 지금도 논쟁거리지만, 그와 '원탁의 기사'가 만든 무용담은 뭇 소년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더왕의 왕재(王才)를 입증한 명검 '엑스칼리버'를 타이틀로 80년대 초 제작된 영화는 아더왕의 전설과 원탁의 기사들의 모험, 왕비 귀비네어와 기사 랜슬롯과의 사랑 등을 한편의 서사시처럼 그려내 명화 반열에 섰다. 특히 OST로 삽입된 '오, 운명의 여신이여'는 언제 들어도 가슴 떨린다.

▦ 아더왕 전설에 나오는 원탁은 아더가 귀비네어와 결혼할 때 장인이 기사 100명과 함께 선물로 줬다고 한다. 여기에 아서는 자신이 선발한 기사 50명을 추가해 호위 기사단을 결성했는데, 원탁에 앉은 기사들은 상하구별 없이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며 우애를 키웠다. 이런 전승에서 비롯된 '원탁회의(round table conference)'는 오늘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가 혹은 개인이 원탁에 둘러앉아 타협을 모색하는 회의를 일컫게 됐다. 최근엔 협조적 회의라면 굳이 원탁이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이 이름을 사용하는 추세다.

▦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가 엊그제 '정치적 순교'와 대선 역할론을 앞세워 탈당하자 문재인 대세론에 맥을 못추던 중도보수 진영에 활기가 돈다. 개헌과 반패권의 아이콘처럼 된 그를 구심점으로 김무성 손학규 유승민 남경필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빅텐트를 치면 대선구도가 확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김무성 의원은 공개적으로 이들에게 '원탁회의'를 제의했다. 반패권과 분권형 개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한 우산 아래 모여 문재인 대항마를 만들자는 것이다.

▦ 하지만 이 원탁을 맴도는 면면에서 랜슬럿이나 갤러하드 같은 기사적 품성과 용맹을 발견하기 힘든다. 가슴 끓게 하고 애간장 타게 하는 스토리도 없다. 문재인의 적폐청산 구호가 울림이 없듯, 이들 '원탁 낭인들’의 반문 주장도 공허하다. 김종인은 '나라는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는 인조의 말을 인용하며 "정쟁과 분열이 나라를 망치게 둘 수 없다"고 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벼랑 끝에 몰린 나라를 구할 백마 탄 기사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까.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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