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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화양연화] 오늘부터 책임여행자

입력
2016.07.0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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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다. 꼬마들이 소매를 붙잡고 ‘원 달러’를 외칠 때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얼굴에는 때가 묻어 있다. 눈빛도 애절하다. 이런 순간을 만날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싸운다. ‘내가 돈을 주면 저 꼬마는 앞으로도 계속 구걸하는 인생을 살 거야’라는 생각과 ‘저 아이에게 1달러가 진짜 필요한 것 아닐까’라는 마음이다. 어떤 행동이 바람직할까. 결론은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참는 것이 맞다.

대부분의 경우, 여행지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줄수록 아이들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구걸하면 살 수 있으니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 한 명 준다고 아이들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여행은 개인적인 행위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길 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떻게 해야 지속 가능한 세상과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개인 여행자뿐만이 아니다. 이미 ‘책임여행’이나 ‘공정무역’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실천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뉴욕에 가면 들르는 중고책 서점 ‘하우징 웍스 유즈드 북카페(Housing Works Used Book Cafe)’도 그중 하나다. 겉보기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카페다. 그러나 커피 원두가 다르다. 이곳 커피들은 남미의 커피농장에서 정당한 값을 주고 사 온 것들이다. 제3세계 노동력과 원료를 값싸게 사들이는 대형 업체들과 달리,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줄 수 있는 가격에 커피를 매입한다. 작은 카페에서 일어나는 얼마 안 되는 소비일 뿐이지만, 이 소비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씨앗을 만든다. 공정무역을 실천하는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되는 행동이다.

책임여행의 기본은 ‘예의’를 갖추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예의다. 온두라스의 한 유스호스텔이었다. 2층 침대를 나눠 쓰던 스텔라는 하루에 30분씩 스페인어를 공부하곤 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언어를 익히는 것은 여행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해, 너도 알겠지만 현지어를 하면 사람들이 더 반갑게 맞아주잖아, 그들과 마음을 더 나눌 수 있어 좋아”라며 활짝 웃었다.

인사말과 숫자, 간단한 문장 몇 개를 익혀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여행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여행지에서 쇼핑할 때도 그렇다. 흥정이 여행의 색다른 재미이기는 하지만, 상황과 나라를 잘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 깎으려고 들지 말자. 현지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흥정하는 것은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로 만든 기념품을 사지 않는 것, 기념품을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는 것, 현지 사람들이 직접 만든 기념품을 사는 것, 현지 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숙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책임여행을 실천하는 방법들이다.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 대신 기차나 자전거를 이용한 여행도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걸어서 하는 여행은 말할 나위도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면, 자원봉사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인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해본다든가, 과테말라의 몬테리코에서 거북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올여름 휴가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라스베이거스나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산토리니 여행을 계획했다고 난감해할 필요는 없다. 언제 어디에서든 책임여행은 실천할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미소와 뉴욕 5번가에서 마주치는 뉴요커에게 보내는 미소가 다르지 않으면 된다.

세계에 펼쳐진 수만 가지의 다양한 삶들을 존중하고 함께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행자인 우리는 잠시 그들의 세계에 방문한 이방인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것, 그것만 마음에 담고 있다면 당신도 오늘부터 책임여행자다.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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