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살아남은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8명이 1박 2일간 100리(40㎞) 길을 걸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했다. 14일부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이곳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아스팔트의 찌는 듯한 열기를 견뎌내며 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그러나 유가족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는 게 이런 것 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유가족들은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았다.
학생들이 걸머진 가방에는 친구들을 기리는 노란 깃발이 꽂혔다. ‘보고 싶다’ ‘지켜봐 줘’ 등 석 달 전만 해도 같은 교실에서 웃고 떠들던, 이제는 볼 수 없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글귀가 깃발에 적혔다. 목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추모하는 노란 손수건을 둘렀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뙤약볕을 막으려 학생들이 든 노란 우산에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와 종이배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적힌 큰 깃발이 뒤를 따랐다. 학부모 10여명과 교사 3명 등 20여명도 학생들과 함께 했다.
이들이 행진을 시작한 건 15일 오후 5시쯤. 수업을 마치고 단원고 정문에 모여 발걸음을 뗐다. 출발에 앞서 신모군이 행진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4월 16일, 온 국민이 봤습니다. 제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저희들은 법을 모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섰습니다. 저희들의 뜻을 가감 없이 전해주십시오.”
장동원 생존학생 가족 대표는 “학생들이 숨진 친구들에 대한 우정과 ‘친구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 국회에서 친구 부모들이 단식농성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며 “순수한 마음으로 결정한 일이니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국회 앞에 도착할 때쯤에는 폭염 속 이틀간의 행진에 지쳐 보이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 밝은 표정이었다. 시민들은 행렬이 지나갈 때 “힘내세요”라고 외치거나 뜨겁게 박수를 쳤다. 발길을 멈추고 말없이 지켜보다 눈물을 훔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학생들은 “감사합니다”라고 큰소리로 화답했다.
행렬에 동참하는 시민도 300여명으로 늘었다. 영등포구 신길동 우신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을 따라온 장영옥(54)씨는 “어떻게든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 나왔다. 아이들이 한창 뛰어 놀아야 할 나이인데, 우리 책임 아닌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민 100여명이 국회 앞에서 이들을 맞았다. 시민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규명하라’ 등 응원 메시지를 적은 팻말을 들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단원고 학생 대표는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가 적은 편지를 김형기 세월호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게 전달했다. 편지에는 ‘배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이제는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행동할 겁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학생들은 가방에 꽂혀 있던 깃발을 국회 담벼락에 붙이면서 먼저 떠나간 친구들이 떠오르는 듯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틀 간의 여정을 마친 학생들은 국회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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