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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서 맞는 추석… 세월호 유족들 "명절이 더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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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서 맞는 추석… 세월호 유족들 "명절이 더 사무친다"

입력
2014.09.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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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망신고도 못해" 눈시울 "고향 가 봐야 슬픔밖에 더 주겠나"

농성 계속하거나 납골당 가 볼 계획… 귀향객 등에 특별법 서명받을 것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4일 경기 안산시 하늘추모공원의 단원고 희생자 봉안당을 찾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과 추모 편지들을 보고 있다. 안산=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4일 경기 안산시 하늘추모공원의 단원고 희생자 봉안당을 찾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과 추모 편지들을 보고 있다. 안산=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송편과 흑인절미, 녹두전, 고추전, 동태전이 4일 오전부터 청와대 인근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 주차장 천막에 속속 놓였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시민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노숙 농성하는 유가족 30여명을 찾아 건넨 명절음식이었다. 떡이나 전을 한입씩 삼킨 유가족들은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참사 142일째인 이날도 길바닥에 앉아 추석을 맞는 처지는 참담했다. 몇 사람은 목이 멘다고 했다.

13일을 청운동에서 찬 밤이슬을 맞은 권미화(41ㆍ오영석군 어머니)씨는 참사 전에는 추석이면 쌀을 빻아 송편을 만들던 평범한 주부였다. “애기가 내가 빚은 송편을 잘 안 먹어 추석이 오는 게 억울하진 않다”고 말했지만 이미 눈 속엔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해 보였다. “어젯밤에는 바람이 차 추석이 왔다 싶더라. 아들 있는 납골당에 다녀올까 한다. 형편 없이 늙어버린 엄마를 못 알아볼까 겁이 난다.”

유가족들은 성큼 다가온 추석을 체감하면서도 달갑지 않다. 우선 떠나 보낸 피붙이와 함께 한 명절의 추억에 가슴팍이 아리다. 친지들이 건넬 걱정과 위로에 차마 말 못하는 고통만 떠오를 뿐이다. 이들은 애써 명절은 평소와 다를 게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권씨처럼 그저 피붙이가 잠든 곳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김성실(49ㆍ김동혁군 어머니)씨는 “지난 설과 달리 친정에 못 갈 거 같다. 친정엄마가 아직 ‘머스마는?’하며 아이를 찾아 가슴 아프다”며 추석이 서둘러 지나가길 바랐다. 정혜숙(46ㆍ박성호군 어머니)씨도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인 충북 음성 친정에 가지 않는다. 그는 “고향 안 가는 게 가족들 도와주는 거다. 우리 보면 슬픔밖에 더 주겠어요”라며 씁쓸해했다.

김정래(44ㆍ안주현군 어머니)씨도 이번 추석에 친정과 시댁에 가지 않는다. 그는 “단원고 합동 영결식이 안 끝났으니 우린 아직 상주다. 아직 사망신고도 못했다”고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래도 추석이니 아들이 좋아하던 갈비와 낙지볶음, 김밥을 만들 것”이라며 밝은 표정을 애써 지었다. 그는 떠난 아들이 있는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서 추석 연휴를 보낼 생각이다.

일부 유가족들은 추석 연휴에도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이어간다. 길옥보(53ㆍ이은별양 이모)씨가 그렇다. 국회에서 단식하다 10일간 병원 신세를 졌던 그는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여길 안 떠날 것”이라며 “국회에 있을 때인 7월 중순 ‘여기서 송편을 빚을지 모른다’고 여겼는데 결국 청운동에서 송편을 빚게 됐다”고 토로했다.

세월호 관련 유가족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는 문지성 학생 아버지(61)도 유가족 일정에 맞춰 서울에 머문다. 그는 “삼보일배도 (경찰에 막혀) 10m도 못 나가고 끝났다. (특별법이) 더 밀린 듯한 상황에서 추석을 맞아 안타깝다. 유족들이 서로를 안쓰러워한다”고 말했다. 엄소영(39ㆍ최성호군 어머니)씨도 “(특별법) 시작은 했는데 끝을 본 것도 아니라 차라리 여기 있는 게 마음 편하다. 국회나 청운동을 떠나면 왠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추석 민심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 제정을 고수하는 유가족에게 등 돌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유가족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임종호(42ㆍ세희양 아버지)는 “수사권과 기소권 없이 진상규명은 어렵다. 어차피 하루 아침에 끝날 게 아니니 끝까지 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추석 연휴에 서명운동에 나서는 이유다. “우리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우리 같은 피해자가 또 안 생기도록 사회를 바꾸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세월호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대책위가 서울 청운동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추석 연휴 공식 일정에도 유가족들의 이런 바람이 묻어 난다. 가족대책위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5일부터 닷새간 전국 38개 도시 80여곳의 버스터미널과 휴게소 등에서 귀향객을 상대로 특별법 서명을 받고 그 필요성을 알리는 자료를 배포한다. 또 6일부터 5일간 광화문광장에서 가족과 국민들이 함께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퀴즈대회’와 촛불문화제도 진행된다. 가수 이은미 강산에 메아리 등의 공연과 연극인들의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가족대책위는 추석 당일인 8일 오전에는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의 정부합동분향소에서 ‘합동 가족기림상’을 차린다. 희생된 학생들이 즐겨 먹던 피자와 치킨 등 음식을 합동 상에 올릴 예정이다. 그 뒤 유가족 10여명은 아직 남은 실종자 10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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