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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밥솥왕 19년’ 쿠쿠전자… 오너 일가 폐쇄적 경영시스템은 여전

입력
2017.07.31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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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한국일보 자료 사진

외환위기가 온 나라를 흔들던 1997년 겨울. 한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으로 전기밥솥을 납품하던 성광전자(현 쿠쿠전자)라는 중소기업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제품을 납품받던 대기업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이유로 더 이상 제품 공급을 받을 수 없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OEM 제품 생산에만 의존해온 이 중소기업에는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말이었다.

성광전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독자 브랜드로 시장에 나서는 건데, 외환위기로 대기업들도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경험도 없는 중소기업이 이런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구자신(76) 사장(현 쿠쿠전자 회장)은 정면승부를 택한다. 밥솥 제조 기술력에는 자부심이 있었던 데다가, 경쟁 상대가 될 대기업들이 시장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라 독자브랜드로 시장에 도전하기에는 오히려 적기라고 판단했다.

구 사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밥솥 품질이 좋다 보니 입소문이 금방 났고, 대기업에 비해 마진을 적게 남기니 전자 대리점들도 앞다퉈 이 회사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1998년 시장에 나온 쿠쿠전자 밥솥은 출시 1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오른 뒤 현재까지 약 19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쿠쿠전자의 지난해 국내 밥솥시장 점유율은 약 70%로 추산된다.

쿠쿠전자 밥솥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에게 명품으로 통하는 쿠쿠전자 밥솥은 면세점 등에서 화장품 등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리는 한국 제품 중 하나다.

밥솥업계 관계자는 “과거 1970, 80년대 일본 코끼리 밥솥을 사려고 국내 주부들이 백화점에 줄을 섰었는데, 지금은 중국 관광객들이 쿠쿠전자 밥솥을 사려고 면세점 등에 줄을 서고 있다”며 “구자신 회장이 외환위기 때 독자 브랜드를 내지 않고 시장 상황을 살피는데 안주했다면, 중국인들이 한국 밥솥을 사 들고 귀국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학 쿠쿠전자 대표. 한국일보 자료 사진
구본학 쿠쿠전자 대표. 한국일보 자료 사진

상장 뒤에도 대주주 고배당 정책 지속

지난 1978년 성광전자로 출범한 쿠쿠전자는 약 39년간 밥솥 개발과 생산에 집중해 온 밥솥 전문기업이다. 하지만 쿠쿠전자가 사세를 불려갈수록 그 화려했던 성공신화만큼 폐쇄적인 경영시스템도 자주 문제점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쿠쿠전자는 2014년 기업공개를 하기 전 이사회와 감사를 친인척으로만 구성해 빈축을 샀다. 특히 회사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는 창업자 구자신 회장과 장남인 구본학(48) 쿠쿠전자 대표, 차남인 구본진 씨 등 삼부자로만 구성돼 있었다. 이사회를 감시하는 감사자리에도 구 회장의 친인척을 앉혀 ‘이사회 견제’라는 감사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폐쇄적 경영시스템은 주주 배당 결정을 둘러싸고 더욱 논란이 됐다. 구자신 삼부자가 장악한 이사회가 주주 배당을 결정하는 데 이 회사 주식 60%는 구자신 삼부자가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셀프배당’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쿠쿠는 상장 직전인 2012년 당기순이익(231억원)의 31%인 73억 6,000만원을 주주배당금으로 책정했다. 이 중 60%인 44억여원은 구자신 삼부자 몫이다. 쿠쿠는 2011년에도 당기순이익(118억원)의 절반 수준인 55억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었다.

쿠쿠전자가 상장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상장 회사답게 이사회에는 3명의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등 폐쇄성 문제를 어느 정도 개선했으나, 상근 이사인 2명의 사내이사 자리에는 여전히 구자신 회장과 장남 구본학 대표만이 앉아있다.

대주주 셀프배당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쿠쿠는 상장 직후인 2014년 122억원의 배당을 시작으로 2015년 172억원, 2016년 252억원으로 해마다 배당금을 늘려가고 있다.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 비중을 나타내는 배당성향도 2014년 13.55%에서 지난해 31%로 2배 이상 늘었다.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했지만 배당정책에 대해선 별반 상황이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외국 등과 비교하면 쿠쿠전자의 30%대의 배당성향은 과하다고는 볼 수 없다”며 “다만 대주주 지분이 너무 높은 데다가, 상장회사 이사회를 여전히 오너일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신사업 추진, 지배력 강화…1석 2조 지주사 전환

쿠쿠전자는 최근 본업이었던 밥솥 사업 영역을 벗어나 렌털을 기반으로 한 공기청정기와 정수기 등 생활가전 사업으로 보폭을 넓히려고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올해 150억원을 투입해 경기 시흥산업단지에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생산 공장을 새로 짓기도 했다.

최근 단행된 지주회사 전환 작업도 렌털 사업에 힘을 주기 위한 조치다. 쿠쿠전자는 렌털사업 강화를 위해 우선 인적분할 방식으로 회사를 기존법인 쿠쿠전자(밥솥)와 신설법인 쿠쿠홈시스(렌털)로 나누기로 했다. 기존 법인인 쿠쿠전자는 물적분할로 쿠쿠홀딩스(지주회사)와 쿠쿠전자로 다시 나뉜다.

쿠쿠전자는 신설된 쿠쿠홀딩스를 통해 코웨이와 SK매직 등이 장악하고 있는 정수기 렌털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렌털업체들이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전 및 가구 청소관리 서비스 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쿠쿠가 렌털사업 강화를 위해 인적분할 과정을 거쳐 지주사 전환을 시도한다고 했지만, 이는 구본진 대표 등 대주주 일가에게 지배력 강화라는 또 다른 이익도 가져다준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들이 기존 회사와 새로 생기는 회사의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쿠쿠전자 지분 33.1%를 보유한 구본학 대표는 신설되는 쿠쿠홈시스 지분도 똑같이 33.1%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구 대표가 확보한 쿠쿠홈시스 지분을 새로 생기는 지주사 쿠쿠홀딩스에 넘기고 쿠쿠홀딩스가 발행하는 신주를 취득하면 회사 지배력은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진다. 의결권이 없었던 쿠쿠전자 자사주 16.82%가 인적분할 과정을 거치며 쿠쿠홈시스의 의결권 있는 지분으로 되살아나는 것도 대주주에게는 보너스다. 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쿠쿠홀딩스를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 일가이기 때문이다.

쿠쿠전자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렌털사업 강화 등 경영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로 대주주 지배력 강화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며 “주주배당은 주주에게 회사 이익을 환원하기 위한 조치로 원칙적으로 주주평등원칙에 입각해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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