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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새로운 핵 위험

입력
2017.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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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생인 나에게 세계 3차 핵전쟁의 위협은 어린 시절 매우 실질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 연방이 붕괴될 때까지 그런 위협, 최소한 동독과 서독 양쪽 다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위협은 계속됐다.

그 이후 아마겟돈을 초래할 수 있는 핵무장 초강대국들의 리스크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오늘날 더 큰 위험은 불안정하고 독재권력이 지배하는 조그만 나라들이 점점 더 핵무기를 취하려고 추구한다는 것이다. 핵 보유국이 됨으로써 이런 정권들은 자신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고, 지역적ㆍ국지적 지정학 이익을 도모할 수 있으며, 더 나가 팽창적 의제를 추구할 수도 있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에 의해 유지된 “억제의 합리성”은 점차 침식돼 왔다. 이제 핵 확산이 증대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문턱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현 상황이 보여주듯, 동아시아나 걸프만의 핵지대화는 세계 평화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주고 받은 말 폭탄을 한번 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화염과 분노”로 응징할 것을 천명했다. 분명히 트럼프 대통령은 억제의 합리성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남은 초강대국 지도자에게 기대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아무 조절 없이 마음대로 내뿜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의 증폭을 촉발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상당기간 상처가 곪았다가 터진 것이다.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북한 정권의 고집이 원인이다.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은 또 미국 서부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는,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개발하고 있다. 미국에 심대한 안보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좋은 옵션은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에서의 선제적 전쟁은 중국과의 전면 대치와 남한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고, 일본도 예상하기 힘든 방향으로 연루될 수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삼각구도는 21세기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그런 경제적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미국이 계속해서 전쟁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지만, 미군의 군사 지도자들은 그 엄청난 비용과 리스크를 볼 때 무력 사용이 현실적인 옵션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얻는다면 미국의 빈틈 없는 안전보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이를 사용할 수단을 갖고 있는 북한이라면, 남한과 일본은 스스로 핵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두 나라는 쉽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아시아의 상황은 20세기의 핵 성격과 19세기의 민족주의적 역학구도를 모두 갖고 있다. 이는 매우 휘발성이 강한 칵테일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구조나 제도, 동맹관계가 완전히 뒤집히거나 의문이 제기되는 형국이어서 국제 시스템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럽고 고집스런 지도력 아래 있는 미국에서 무엇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2016년 대선 전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유착 의혹에 대한 조사, 그리고 오바마 케어의 철폐 실패는 미국 행정부가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세금 감면, 멕시코 국경 장벽, 그리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같은 의제는 트럼프 자신의 감정적인 발산에 불과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극렬 우익세력을 자극할 뿐이다.

미국 내부 불안정은 지구적 우려의 원인이다. 만약 미국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데 더 이상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리더십의 공백에 직면할 것이고, 핵 확산에 관한 한 가장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핵 위험이 올 가을에 다가온다. 만약 미국 의회가 이란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한다면, 이란과 P5+1(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핵 협정은 무너질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새 제재에 맞서 “수시간 내에”이 협정을 폐기할 것이라고 지난 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북한 위기와 관련해 이는 불필요한 핵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란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미국이 되돌아간다면 이란 강경파의 입지만 강화해주는 자기파괴적인 자충수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위기와 전쟁으로 점철된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 유럽 국가들이 핵 협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만 혼자 떨어져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과 불화를 겪을 수도 있다.

현재의 핵 위협은 정확히 “화염과 분노”의 정반대를 원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무력 과시에 기반하지 않는 냉정함과 합리성, 그리고 인내심 있는 외교다. 만약 마지막 남은 초강대국이 이런 덕목을 포기한다면, 우리 모두의 세계는 심대한 결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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