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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좋은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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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좋은 경제학자'

입력
2011.02.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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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 의 23장은 '좋은 경제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역설적 제목을 달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40만권 이상 팔리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정작 학계는 보수ㆍ진보 가릴 것 없이 그런 열풍을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논쟁적 저작의 사실상 결론이다. 여기서 장 교수는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을 먹여 살리는 수단으로는 무척 유용하다"는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냉소적 입담을 인용하며, "경제학이 경제에 되레 해롭다고 생각할 이유가 많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 장 교수가 비판하는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세상을 풍미해온 자유시장 경제학, 즉 신자유주의를 신봉ㆍ전파해온 특정 부류의 경제학'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환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경제학자들이다. 이 집단의 죄목은 금융 규제 철폐와 월가의 무제한적인 단기 이윤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며 '골디락스(인플레 없는 고성장) 경제'의 환상을 심어준 것에 그치지 않는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자연법적 결과이고 국가개입 최소화 및 탈산업화가 성장의 초석이라는 교리문답도 그들 작품이다.

■ 장 교수가 조롱하는 '좋은 경제학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시스템에 내재한 위험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집단적 상상력의 결핍이 금융위기를 예측 못한 이유"라는 변명을 늘어놓은 집단이다. 이성적 개인의 합리적 경제행위와 완전경쟁의 자유시장을 그토록 강조하던 사람들이 돌연'집단적 상상력 실패'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결국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한 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 마지막 장은 자유시장 경제의 허구와 자본주의의 실상을 꿰뚫는 '올바른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 여기에 이르기까지 장 교수는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의 심기도 마구 긁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거나 재벌체제의 순기능을 옹호하는 그의 주장은 너무 단순하고 분명 낯설다. 그러나 학계의 불편함을 비웃듯이 그의 책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낯익은 경제학'의 신뢰위기를 잘 대변한다. 저축은행 부실과 영업정지 후유증으로 가슴 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민금융 규제를 섣불리 푼 나쁜 정책과 감독을 소홀히 한 나쁜 관료 탓인데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정책과 세금은 관리들을 먹여 살리는 수단으로만 유용할 뿐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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