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외교ㆍ안보팀 교체한다고 될 일인가

입력
2017.09.27 15:59
0 0

안보 위기상황 관리 취약 징후 뚜렷해

햇볕정책ㆍ자주외교 허상 좇다가 실패

청와대 냉철한 현실감각 회복 시급해

십여 일 전 한 기자의 격정적 페이스북 메시지가 화제에 올랐다. 그는 “문통(문 대통령)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라며 “기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짖으라는 대로 짖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장면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가?”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집권 초기 사드 배치에 시비를 걸었던 문 대통령이 북핵 위기로 오히려 사드 배치를 서두른 데 대해 지지층 내에서 비판이 일었다. 그러자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나름대로 충정 어린 호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담항설일 뿐인 이 얘기를 두고 느닷없는 신파극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미담 발굴의 연출자가 됐다. 김 의원은 한 대학 강연에서 이 메시지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통일ㆍ외교ㆍ안보 분야 행보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분석해 놓았다”며 감동적 공론으로 끌어올렸다.

얘기가 그저 페이스북에서 나돌고 말았다면 모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최 측근 정치인에 의해 공론화됐다면 상황은 다르다. 당장 외교적 사안이 된다. 얘기는 젊은 시절 대의를 위해 동네 깡패들의 가랑이 밑을 기어간 중국 전국시대 명장 한신의 고사를 빗댄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 측근이 얘기를 칭송하는 순간, 정부의 대미외교는 그대로 굴욕이 되고, 현 정권은 미국을 깡패로 여긴다고 오해될 소지가 충분해진다. 정권 핵심 정치인이 외교적 사안에 대해 이토록 무감각하다는 사실이야말로 현 정부가 직면한 외교안보 위기의 원인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최근의 한반도 긴장이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미숙 탓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의 잇단 핵 도발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괴한 스타일은 어찌 보면 우리 정부 관리능력 밖의 변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문재인 정부의 오판과 선입견, 답답한 도그마가 일을 악화시킨 건 분명하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정부의 가장 심각한 오판은 ‘베를린평화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월 발표한 이 구상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제안이다. 합리적 내용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발표 준비와 타이밍이 너무나 어설펐다는 얘기다. 그 정도의 외교정책이라면 당연히 면밀한 정세분석을 통해 북한을 포함한 이해 관계국의 즉각적 호응이 나오고, 구체적 실행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사전에 외교적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하지만 햇볕정책의 허상에 취해 현실감각을 놓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비상한 시기에 우리 정부의 어설픔을 노출하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물론 이런 큰 오판이 정권 핵심부의 이른바 ‘대화파’에서 비롯됐음은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다. 사실 대화와 교류를 통한 남북 평화공존은 국내 어떤 정파도 반대하지 않는 전략적 목표다. 다만 상황에 맞춰 그 대화와 교류를 어떻게 추동할 것이냐에 대해 전술적 차이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파는 전술적 이견을 가진 측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완강한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최근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야당의 핵 무장론을 가리켜 “철 없는 주장”이라고 단칼에 매도한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북한이 그걸 덥석 잡을 것이라는 ‘우리 민족끼리’식 의식구조는 상황 오판뿐 아니라, 어설픈 ‘자주외교’ 시도로 이어지며 미ㆍ중ㆍ일과의 불필요한 긴장과 오해까지 불러일으켰다. 사드 배치를 놓고 미중 사이에서 펼친 속 보이는 눈치 외교도 그랬거니와, 최근까지도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미국과의 대북 조치 이견도 결국엔 우리 정부의 안보 주도권과 위기관리 능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27일 가까스로 성사된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회동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정부 외교ㆍ안보라인의 전면 교체를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의 완고한 도그마가 온존하는 한 외교ㆍ안보라인 얼굴만 바꾼다고 될 일인가 싶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