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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 읽어?] 최동훈 감독 “삼국유사의 어마어마함, 사람들이 잘 몰라 안타까워”

입력
2018.05.11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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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작 읽으며 시나리오 눈 떠

최고의 작가는 스티븐 킹

쉽게 쓰는 것이 대단한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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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은 이야기의 힘

어릴 적 즐겨읽은 ‘보물섬’ ‘삼총사’

이문열ㆍ김주영 등 소설이 원천

요즘 읽는 책은 ‘객주’ ‘장길산’

최동훈(오른쪽) 영화감독과 김민정 시인이 7일 서울 성동구 최 감독 사무실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최동훈(오른쪽) 영화감독과 김민정 시인이 7일 서울 성동구 최 감독 사무실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1,000만 관객을 두 번이나, 그것도 연타석으로 기록한 영화감독 최동훈. 수치에 약한 나는 그와 마주하자마자 1,000만이면 잠실운동장의 수용 인원이 한 3만이라 할 때 곱하기 333을 하면 되는 정도인 거지요? 라는 뜬금없는 말로 맥없이 입을 풀었다. 초면이고 어색하니 일단 차리고 보자는 눈칫밥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배려를 눈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영화에 젬병이다 싶은 나는 이내 그 웃음에 안도한 채로 ‘어린이’도 아니면서 그에게 온갖 호기심을 내던졌다. 묘한 것이 그때마다 귀결점이 책 본연에 당도한다는 데 있었다. 뭐지 이 사람. 영화도 삶도 온통 책으로 빚어졌잖아.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술집이 아닌 서점에 들른 것을 자랑삼 게 된 것은 그날 이후 집에 쌓인 이 책들 덕분이다. ‘숙영낭자전’, ‘풀어서 본 반민특위 재판기록’, ‘약산과 의열단’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그리고 잊고 있던 요 네스뵈의 최근 소설들까지. 그러니까 그를 안 만났으면 만나보지 못했을 남의 인생들. 어쨌거나 그는 영화와 책과 재미로 사는 사람 같았다. 재미라는 말을 이렇게 자주 쓰는 ‘어른’은 간만인 듯했다.

김민정(김)= “성격 좀 급하지 않으세요? 영화 속에서 ‘사람 최동훈’이 보이더라고요.”

최동훈(최)=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지루함이라고 생각해요. 글도 건조한 걸 좋아하는 편이고 웬만하면 멜로가 잘 안 되는 쪽을 좇아요. 관계가 성립이 될 것 같다가 빠짝 깨지는 걸 즐겨요. 사실 ‘도둑들’도 보면 왜 모였다 찢어졌는가, 하는 얘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예술적이지 않다, 뭐 그런 말도 듣는데 저는 그런 얘기에 별 관심이 없어요. 내가 싫은데 그걸 어찌하겠어요. 책도 빨리 보는 편이에요. 똥도 빨리 싸요. 참, 시나리오 어떻게 쓰지 생각할 때가 가장 느리구나.”

김= “영화마다 실력파 배우들이 어쩜 그리 ‘떼’로 나오는지 다시 봐도 놀라웠어요.”

최= “저더러 스타들과 주로 작업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좋은 배우들이니까 하는 거예요. 배우 복이 없는 좋은 감독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배우만큼 고독한 직업도 없거든요. 카메라 앞에 자기밖에 없다는 불안감, 두려움, 쫓김.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배우랑 대화할 때 무전기 안 써요. 50m 뛰어가서 조용히 남이 듣지 않게 얘기하고 다시 모니터로 뛰어와요. 살도 빠지고 얼마나 좋아요. 배우랑 둘이서 긴밀히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또한 감독만의 특권 아니겠어요.”

최동훈 감독. 오대근 기자
최동훈 감독. 오대근 기자

김= “국문과 출신이시니 아무래도 ‘책’과의 인연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최= “어릴 적에 집이 너무 가난해서 책을 사볼 수가 없었어요. 진짜예요!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섯 시간 수업한다고 도시락을 준비하라는데 그거(도시락통) 살 돈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가 밥을 해서 상에 담아가지고는 머리에 이고 학교까지 오셨어요. 운동장 나무 아래서 같이 밥 먹고 엄마는 다시 머리에 빈 상 이고 집에 가셨어요. 지금 생각하니 완전 거한 추억이긴 하네요(웃음). 책은 동네 사는 부잣집 친구네 가서 많이 봤어요.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특히 재미나게 읽었던 게 기억나요. 묘한 건 ’레미제라블’을 읽었는데 난 (빅토르) 위고 과는 아니구나, 하는 걸 그때 본능적으로 알아버렸다는 거죠.

김= “감독님 영화의 기원이 얼추 그려지는 대목인데요. 역시나 ‘이야기’네요!”

최= “아무래도 성향이라는 게 타고나기도 하는 걸 테니까요. 중고등학교 때 한국 소설들 참 많이 읽었어요. 김주영, 이문열, 황석영, 조해일, 한수산, 최인호, 박범신, 윤흥길… 다 이야기꾼으로 면모들이 대단한 분들이잖아요. 이모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마치고 이모 집에 가서 그 소설들 독파하곤 했어요.”

김= “영화에 미쳤던 대학시절로 가보건대… ‘영화 공부’는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최= “특히나 할리우드 영화들은 한 90% 원작을 토대로 하니까 방법이라고는 영화와 원작을 다 섭렵하는 수밖에요. 예를 들어 앨런 파커의 ‘엔젤 하트’를 봤는데 얘기가 어렵다, 그러면 원작 소설인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 엔젤’을 찾아 읽는 거예요. 이를테면 리차드 마퀀드의 ‘바늘구멍’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뭐가 좀 간질거린다, 하면 원작 소설인 켄 폴릿의 ‘바늘구멍’을 찾아 읽는 거예요. 그럼 원작에서 뭘 빼고 영화에다 뭘 넣었는지 아주 잘 보이거든요.”

김민정 시인. 오대근 기자
김민정 시인. 오대근 기자

김=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 대한 얘기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최= “작업은 모텔, 아니면 민박집에서 해요. 조용하니까요. 작업은 어부과. 내내 놀다가 날씨 한창 좋을 때 우르르 뛰어들어 반짝 일하는 스타일. 전에는 속초에 있는 민박집에서 한 20일간 쓰고 오고 그랬어요. 아침에 6시가 되면 오징어 배에 불이 꺼지는데 그때까지 밤새 쓰고 술을 한잔 마시면서 아침 방송을 보다 자는 그런 패턴으로 작업하곤 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이후에 엄청 뜯어고치죠. 미진함이 조금이라도 남은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건 재앙이거든요. 방화복에 구멍이 났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민다고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는 없잖아요. 완성이 되었다 해도 좀 묵혀요. 거리감을 갖고 좀 놔둬보는 거죠.”

김= “쓰고 만드는 직업의 소유자이니 ‘읽는 일’로도 그리 무관하지 않을 거라 봅니다만.”

최= “얼마 전에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네 권을 읽었는데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어요. 너무 재밌어 가지고요. 그 사람이 원래 열 권을 쓰기로 했는데 심장마비로 죽었잖아요. 이왕이면 다 쓰고 돌아가시지 싶을 정도로 아쉽더라고요. 왜 미국에서 한 번 유럽에서 한 번 그렇게 두 번 영화화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책만큼 왜 영화가 재미없었나 보니까 작업이 어려웠겠다 싶은 거예요. 영화로 잘 만들었네, 아니네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어떤 형식이라는 데에 잘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갈 수 없는 얘기였구나, 새삼 알겠더라고요.”

김= “정말이지 최고다, 하고 감독님이 꼽으시는 ‘작가’가 있다면요.”

최= “스티븐 킹이요. 담백하거든요. 그냥 훅 들어오거든요. 중학교 2학년도 읽을 수 있게 쉽게 쓰거든요. 그거 실은 굉장히 어렵고 대단한 능력이거든요. ‘쇼생크 탈출’ ‘미저리’ 같은 소설 말고도 글 쓰는 작법에 관한 책으로 ‘유혹하는 글쓰기’가 있는데, ‘글쓰기에서도 자기가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놓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팔심을 기르는 것이 좋다’라는, 흔히 연장통의 비유라 불리는 이 구절이 유명하죠.”

김= “국내에서 최고다, 하고 감독님이 엄지 척하시는 ‘작품’이 있다면요.”

최= “일연의 ’삼국유사’요. 언제나 재밌어요. 우리는 어마어마한 판타지를 갖고 있던 민족이었는데 이 멋진 걸 이 대단한 걸 사람들은 어렸을 때 보고 마는 이야기라 치부한 지 오래죠. 이 책의 귀함에 대해 아는 사람은 너무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영 모르는 듯해요. 안타깝죠. 진짜 재밌는데.

김= “지금 읽고 있어 ‘따끈따끈한 내 책’ 소식을 마지막으로 좀 전해주세요.”

최= “’객주’와 ‘장길산’이요. 발로 전국을 누비며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을 글이더라고요. 작가가 보부상처럼 발바닥 부르트게 걸어 다녔을 것이 눈에 훤했어요. 소설은 그런 게 진짜배기인데. 한마디로 미쳐서 쓴 책이란 얘기겠죠. 아직 좀 남았어요. 마저 읽고요.”

김민정 시인∙출판사 난다 대표

◆최동훈 감독

1971년 태어났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감독이 됐고, ‘도둑들’(2012)과 ‘암살’(2015)로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충무로에서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 한국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2018 책의 해’를 맞아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함께 ‘무슨 책 읽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김민정 시인이 각계 명사들을 만나 책에 대해 나눈 대화를 매주 금요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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