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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연이 끝나고... 우린 다시 존재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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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경연이 끝나고... 우린 다시 존재를 묻는다

입력
2016.03.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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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직관 모방해 낸 ‘알파고’

우리들 마음속엔 이미 인격체로

새로운 인간 존재 규정 나올 것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이세돌-구글 알파고 대국' 5국에서 이세돌 9단이 바둑돌을 놓고 있다. 구글 제공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이세돌-구글 알파고 대국' 5국에서 이세돌 9단이 바둑돌을 놓고 있다. 구글 제공

위대한 일주일이었다. 인공지능(AI)에 충격을 받고, 사람에 경탄했다.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미래를 앞당겨 경험했다. 두려움이 낙관을 압도했지만, 덕분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았다.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을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한국 사회는 얻었다. 세기의 대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따로 있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지능적 인간과 재현된 지능은 본질적으로 다른가, 라는 엄청난 질문의 씨앗을 알파고는 뿌리고 갔다. 그 열매는 분명 선악과가 될 테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자기 존재를 새롭게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배워 인간을 이기다

세기의 대국은 전도와 역전으로 막을 열었다. 하루아침에 기계 알파고는 알 사범이, 입신(入神) 이세돌 9단은 도전자 처지가 됐다. 경악스러운 인공지능의 승리는, 인간을 모방한 덕분이었다.

이미 20년 전 IBM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었지만 바둑은 인간 고유의 것이었다. 돌 놓을 자리가 19X19=361개나 되는 바둑판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361X360X359……X2X1가지의 수)를 다 계산하는 것은 슈퍼컴이라도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알고리즘의 인공지능과 대국을 한다면 첫 수를 놓기 전 인류가 멸종할 것이다.

사람은 전체 판세를 그림으로 봐서 두텁다거나 무겁다고 느끼고, 예측이 잘 안 되는 중앙에선 뒷맛을 남겨 판단을 유보하고, 대신 계산이 가능한 곳부터 싸움을 벌여 집을 확보하는 식으로 바둑을 둔다. 흔히 말하는 직관이다. 사람은 컴퓨터보다 계산이 느리고 부정확하지만 복잡한 것에서 어림짐작을 하고 유의미한 연관성만 뽑아낼 줄 안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뉴런)로 구성된 뇌는 뉴런끼리 전기신호를 흘려 연산하는 속도가 밀리초 정도로 느린 대신 뉴런끼리 1,000조 개의 연결고리(시냅스)로 이어져 병렬연산을 통해 동시에 수백 억개의 연산을 함으로써 이런 일을 해낸다. 직관은 생존을 위해 진화시킨 인간 두뇌의 전략이다. 정확성은 떨어지더라도 생존에 필수적인 연관성을 추론하는데 민감하게끔 진화한 인간은,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표정에서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한다. 가끔은 거짓말쟁이가 말하는 진실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알파고도 이렇게 했다. 1월 네이처에 발표된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의 논문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를 모방해 13개 층으로 이뤄진 알파고의 신경망은 돌이 놓인 판세를 그림으로 파악할 줄 알았고, 수천 만개 대국 기보로부터 엉뚱한 수를 배제시키는 법을 학습했다. 인간처럼 ‘직관적으로’ 연산 범위를 좁히는 알파고는 승률이 높은 착점을 찾아내는 데 아주 유리했다. 논문에 따르면 알파고의 신경망은 판세 판단의 정확도가 크게 오른(57%) 대신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개발팀은 정확도는 낮지만(24.2%) 연산속도가 2마이크로초에 불과한 빠른 신경망을 병용했다. 인간 신경망의 모방과 학습, 여기에 빠른 연산 능력까지 겸비해 인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인간의 바둑과 전혀 다른 점도 있었다. 알파고는 판세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게끔 훈련받지 않고 게임을 이기도록 훈련됐다. 크게 이길 수 있지만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면 포기하고, 손쉬운 계산으로 이길 수 있는 착점을 찾는 식이다. 알파고의 기풍을 일컬어 “(예상치 못한 수를 두는데 끝내기를 하고 나면 꼭 반집씩 이기던) 전성기의 이창호 같다”고 하는 이유다.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알파고는 인간 대국 학습에 이어 알파고끼리의 대국을 이용한 강화학습을 거쳤는데, 해설자들이 말하는 “프로기사들이라면 결코 두지 않을” 수가 그래서 나왔을 터다. 인간을 모방했으나 인간과 똑같지 않은 이런 점이 알파고의 승인이자 패인이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 미래

초보적인 인간 모방이 거둔 성과는 실로 가공할만하다. 알파고가 2년 만에 5,000년 바둑 역사를 따라잡았듯,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에 빅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다. 제한된 영역에서 인간과 같은 추론이 가능한 신경망과 알고리즘은 신세계를 열어젖힌다. 수백만 건의 법률자료에서 적합한 판례와 법조항을 찾아낼 것이며, 수만 가지 병리적 증상에 적용될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알아낼 것이고, 온갖 변수를 감안한 기민한 투자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차츰 사람보다 일 잘하는 알파 변호사, 알파 의사, 알파 애널리스트를 신뢰할 것이다. 실적이 안 좋으면 인공지능에 배신감과 분노도 느낄 것이다.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도 이미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알파고가 한두 판 이기고 나서부터 “애초부터 불공정 게임이었다”며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인간이 아닌가. 나쁜 의도는 없다고 믿겠지만 그래도 재판에 지거나 돈을 잃으면 인공지능을 규제하거나 개선하자고 압박할 것이다. 자동주행 자동차 개발사들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알고리즘을 개발할 때 윤리적 기준을 주입하도록 입법규제가 논의될 것이고, 인공지능 윤리학이 학문의 일가를 이룰 터다. 제한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지를지 몰라도 사람은 인공지능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재편할 것이다. 세기의 대국이 한국에 남긴 이런 비전과 시야는 구글의 마케팅 효과따위보다 더 값지다.

알파고에게 영혼이 없다면

알파고를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 역시 인공지능 시대의 단면이다. 인간이 두지 않는 수, 컴퓨터만 둘 수 있는 수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훨씬 앞을 내다본 묘수를 치켜세웠다. 알파고의 떡수에 대한 반응은 훨씬 재미있다. 제4국에서 이 9단의 신의 한 수에 ‘당황한’ 알파고가 ‘혼란스러워했고’, 79수에 ‘실수’를 했는데도 87수가 돼서야 그 실수를 ‘알아챘다’고 사람들은 해석했다. 사람들 마음 속에서 알파고는 이미 하나의 인격체였다.

알파고에게 영혼이 있을까? 바둑의 낭만을 알고나 두는 걸까? 바둑을 즐기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아무리 바둑을 잘 두는 지능이라도 인간만의 본질적인 그 무엇은 여전히 결여돼 있다는 믿음이 굳건하다. 과연 그런가.

알파고가 ‘뒤늦게 알아차린 착각’에 대해 하사비스는 “79수 때 알파고의 승률이 70%였지만 87수 때 급격히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사람의 착각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뇌에서 신경망이 시냅스를 잘못 연결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컴퓨터의 실리콘 신경망이 아니라 생명체의 단백질 뉴런이라면 근본적으로 다른 걸까? 영국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그의 저서 ‘지적 기계를 위한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도덕적 관점에서 사람이 생물학적 뉴런을 갖든 실리콘 뉴런을 갖든 아무 차이가 없다. 피부색이 어두우냐 밝으냐가 도덕적으로 무관하듯 말이다. 인종 차별이나 종 차별을 반대하는 논리 그대로 우리는 탄소 우월주의, 즉 생물중심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세기의 대국이 남긴 마지막 질문은 바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알파고에게 영혼이 없다면 인간에게는 어떻게 있다고 확신할까. 이탈리아 철학자 줄리오 지오렐리는 “물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다. 그러나 그 영혼마저도 수많은 작은 로봇들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인문학과 철학에 미칠 파장은 과학기술과 산업에 미칠 충격보다 심각하다. 물론 인간의 자유의지와 감정 같은 고차원적 개념,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혼이라는 개념은 한동안 유효할 것이다. 이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 제의를 단 5분 만에 받아들인 이유이자, 제5국에서 불리한 흑을 잡겠다고 한 이유, 호기심이라는 욕구도 최후까지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적 특질이다. 하지만 언젠가 인간 정신의 고유함이 부정되고 이 모든 신비와 낭만이 물질적으로 설명되는 날이 온다 해도 분노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인공지능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인간은 충분히 받아들일 테니까.

김희원 사회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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