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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이소

입력
2016.01.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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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새 새끼들이 막 둥지를 떠나 물로 가려 하고 있다. 날이 새기 전 새벽녘, 뱀이랑 족제비가 일어나기 전에 온 식구가 얼른 느티나무 속 둥지에서 뛰어내려 냇물로 가야 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일곱 마리 새끼가 모두 뛰어내렸는데 막내 원앙이만 꾸물대고 오지 않는다. “싸기싸기 내려오니라.” 엄마 원앙이는 자꾸 꾸무럭거리면 떼놓고 간다고 막내에게 겁을 준다. “엄마두 인제 몰러. 오든지 말든지 맘대루 햐.” 엄마 원앙이가 기다리다 못해 최후통첩을 하고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앞장서자 드디어 막내 원앙이도 풀쩍 뛰어내린다. “엄마 같이 가. 하냥 가자니께.” 하면서.

이소, 떠날 리(離) 둥지 소(巢). 보금자리를 뜻하는 소(巢) 글자는 나무 위에 둥지가 있고 그 위에 새가 세 마리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다. 송진권 시인의 ‘이소’는 새끼 원앙이들이 다 자라 둥지를 떠나는 순간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살던 둥지에서 넓은 세상으로 훌쩍 건너가는 순간이다. 막내를 재촉하는 엄마의 충청도 사투리가 맛깔스럽고, 원앙이들의 행렬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때가 되면 사람도 둥지를 떠나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둥지를 못 떠나고 맴돈다. 둥지에 머물기엔 너무 커버렸지만 둥지 밖에 알맞은 거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둥지를 나와서도 경계에서 장기간 대기 상태로 있으면서 기약 없는 시도만을 되풀이하는 청춘도 있다. 둥지를 떠나 자기 몫의 한 생을 지내고 나서 지친 몸을 쉬러 안온한 보금자리로 귀소(歸巢)하려 할 때도 막막해진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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