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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헌재는 대의기구인가

입력
2016.12.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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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경범죄처벌법 제3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 등에 대한 재판을 하려고 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경범죄처벌법 제3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 등에 대한 재판을 하려고 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광화문은 아고라였다. 정치권이 질서 있는 퇴진과 탄핵 사이서 오락가락하며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주권자의 뜻은 분명했다. 탄핵이 됐건 하야가 됐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이고 불가역적인 퇴진이다.

전국에서 200만이 광장으로 나왔다는 지난 주말, 종로 방면에서 광화문 우체국으로 접어들자 마치 대형 극장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함성이 빌딩 숲에 갇혀 메아리 치는 순간 가슴 깊숙이서 뭉클한 무엇인가가 함께 요동쳤다. 민회(民會)와 재판이 열리던 고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의 장인 아고라가 연극 무대로 쓰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87년 민주항쟁 당시 두려운 마음으로 거리에 나서던 때를 떠올리며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이 군중의 파도에 떼밀려 광화문 앞까지 다다랐다.

100만인지 200만인지 가늠할 수 없는 촛불과 거대한 함성은 12월9일로 향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 반대의 촛불이 타올랐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의 탄핵을 밀어붙이는 촛불이다. 주권자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조기대선의 유불리만 살피는 정치권에 맡겨둘 수 없어 직접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바야흐로 탄핵정국으로 접어든다.

대체로 국민의 뜻이 그러하므로 헌법재판소도 대세를 거역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길한 조짐도 없지 않다. 박한철 헌재 소장이 내년1월 퇴임하고 이정미 재판관마저 3월로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심리가 길어진다면 탄핵 인용 정족수인 6인의 찬성이 위태위태하다. 통진당 해산 결정과정에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헌재 논의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정황까지 나온 마당에 헌재의 정치적 독립성도 의심받고 있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헌재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은 출범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법을 해석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며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에 견주어 민주적 존립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논란의 중심이다. 헌재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하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3각 정립구조로 형식에서는 삼권분립 원칙에 가장 충실한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독립은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결국 헌재 재판관의 3분2는 대통령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지명하는 3인 가운데 1명이 집권당 몫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재판관 7명을 정권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헌재는 항상 정치적 결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말하자면 헌재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주권자의 위임을 받아 간접으로 구성한 대의기관이다. 이 지점에서 과연 직접 대의기구도 아닌 헌재에 대통령 탄핵을 맡기는 게 옳은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세계 각국이 대통령의 탄핵절차를 대체로 의회에 맡기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근거가 없는 의구심도 아니다. 물론 서방 선진국들은 대개 양원제 하에서 하원과 상원의 표결로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헌재를 상원으로 의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하지만 헌재를 국민이 직접 뽑는 의회 조직과 같은 직접 대의기구와 동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재의 존립기반에 대한 문제제기는 헌재 주변의 수상한 움직임 때문이다. 헌재가 범죄 사실 확인을 위해 형사재판 절차대로 심리를 진행한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심리 지연설’이 실제 나돌고 있다. 주권자가 직접 대의기구인 국회를 믿지 못하겠다며 직접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뛰어 나온 마당에 간접 대의기구인 헌재가 꼼수를 부린다면 헌재는 해체 요구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곤 국제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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